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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도(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별들의 이동이 심하다. 육군참모총장·기무사령관의 전격 경질부터 시작해서 군사령관까지 바뀌었다. 이때마다 대통령이 커다란 칼을 신임 장군들에게 하사하며 리번을 매어주는 장면을 TV 뉴스를 통해 보게 된다.
길이 1m정도,손잡이 부분은 피나무에 상어가죽을 입힌 이 칼을 삼정도라 부른다. 이 삼정도에는 호국·통일·번영의 세가지 정신을 달성하라는 뜻 풀이와 장성의 계급·성명·대통령의 사인이 들어있고 소장 이상의 장성이 보직 신고시 이 지휘검을 받게 된다. 삼정도를 하사받은 장성들은 이를 가보처럼 간직하면서 관할 경찰서에 도검류 소유자로 신고토록 규정되어 있다.
이 삼정도 수여식이 어떤 유래와 과정을 거쳐 5공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 시작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비공식적으로 있었다는 설도 있고,하나회 멤버의 장성 진급시 사적으로 전수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공식 수여식은 5공의 서슬퍼런 통치와 함께 전면에 등장한 군사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문민개혁의 벽두부터 그 칼이 클로스업되고 있는지 볼수록 이질감이 든다. 문민시대의 개막이니 문민대통령에게 군인들이 충성의 서약을 하는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은게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지만 그건 역시 역설일 뿐이다.
문민정치를 내세웠던 조선왕조 시대에도 칼이란 언제나 금기의 대상이었고 임금이 군지휘관에게 칼을 수여하는 의식이란 일찍이 없었다. 다만 전란이 일어난 전시체제에는 도체찰사를 임명하고 그에게 병마의 대권을 맡기면서 지휘검을 하사하는 관례는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평상시의 군지휘자 임명에 임금이 칼을 수여한 전례를 우리 역사에선 보기 어렵다.
어떤 의식이든 한번 자리를 잡으면 고치기 어려운 법이다. 그렇지만 그 유래와 과정이 불분명한 의식을 근엄한 표정으로 끔찍이 모시는건 아무래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칼을 매개로 해서 충성의 서약을 맺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전근대적인 발상인가. 삼정도 수여식은 차제에 그 유래와 의미를 다시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문민시대에 걸맞은 새모습의 장군임명식도 연구해 볼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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