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친노의 마지막 변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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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07면

“요새 맘이 참 편해요. 아침에 세수하고 거울을 보면 내가 봐도 얼굴색이 괜찮더라니까.”

18일 국회 의원회관. 우연히 마주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안부를 물었다. 싱글싱글 웃으며 답한다. 바쁘다는 그를 붙잡고 앉았다.

-대선 후보 출마설도 있고, 요즘 꽤 부상하고 있는데.

“부상은 무슨…. 계속 잠수 중이죠.(웃음)”

-그래도 범여권 주요 주자 아닌가요.

“여론조사 봐도 만날 잠수던데요. 이륙도 못하고 바닥에 찰싹 붙어서.”

유 전 장관은 최근 “이번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완전히 정치를 끝내는 것부터 대선에 출마하는 것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최종 결정은 언제 하실 건가요.

“제 상황이 좀 특수한데…. 좋은 정당 만들겠다고 정치에 들어왔잖아요. 그런데 열린우리당 들어와서 실패해버렸죠. 당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출마 선언을 한다, 안 한다 하는 게….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게 너무 어색해요.”

-출마 준비는 하신다던데요.

“아카시아 잎을 하나씩 따면서 ‘(출마)한다’ ‘안 한다’를 따져보다 마지막에 ‘안 한다’가 남으면 그건 괜찮아요. 그런데 ‘한다’가 남았는데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으면 곤란하죠.”

-무슨 준비를 한다는 건가요.

“정책 준비죠. 다른 게 뭐….”

유 전 장관은 대화 내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범여권 인사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 못한 것 같다. 비노(非盧) 진영에선 “유 전 장관의 출마는 대통합의 장애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동료 의원들이 왜 그렇게 미워할까요.

“제가 토론할 때 좀 날카롭게 하긴 했죠. 배려가 부족했던 거지…. 왜냐면 제가 정치하는 동인(動因)이 ‘앵거(angerㆍ분노)’였어요. 낡은 정당에 대한 분노. 지금 돌이켜보면 분노로는 사람을 바꾸지도 못하고, 일이 되게 하기도 어려워요. 예전 동영상을 보면 내가 봐도 내 얼굴이 무섭더라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이 보면 어땠겠냐고.”

-유 전 장관 입에서 이런 말씀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참 어려운 거예요, 세상 산다는 게. 국회의원이든, 일반 회사원이든. 데모하는 시민단체 회원들도 나름대로 고달프고, 그거 막으러 가는 경찰도 고달프고. 우리 사회가 서로 많이 괴롭히죠.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그렇게 안 하는 게 서로 좋은 게 더 많은데.”

-열린우리당이 무너지는 걸 보니 어떠세요.

“당은… 열린우리당이 참 아쉬워요(여기서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아, 내가 정말… 총선 끝나자마자 불안불안해서…. 이렇게 가면 망하는데. 그래서 그거 붙들어보려고… 악을, 악을 썼는데…. 어차피 안 되는 거였는데… 괜히 인심만 잃었어요.”

그의 출마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비노 진영만이 아니다. 친노(親盧) 쪽에도 그의 출마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상당수다. 이미 출마 선언을 한 후보 진영이 특히 그렇다. 친노 성향 유권자 중에 유 전 장관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출마와 관련해 눈여겨볼 부분이 또 하나 있다. 출마하면 그는 자신이 “인생의 스승”이라고 말해온 이해찬 전 총리와 경쟁하게 된다. 유 전 장관은 이 전 총리가 초선 의원이던 13대 국회에서 그의 보좌관을 지냈다.

-이 전 총리 캠프 사람들 중엔 유 전 장관의 출마를 꺼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결정하는 게 더 현명한 것인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유 전 장관의 친누나인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최근 이 전 총리 캠프에 홍보위원장으로 합류한 것도 관심거리다. 유 전 위원은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경륜과 정책수행 능력에서 동생은 이 전 총리에 못 미친다”며 “설령 두 사람이 경선에서 경쟁하더라도 이 전 총리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친누나가 이 전 총리 캠프에 가셨는데요.

“제가 가시라고 권했어요. 누나 판단을 존중하고…. 누나가 저를 돕는 것보다 이 전 총리를 돕는 것이 내게 더 기쁜 일이라고 했죠.”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경선에 나섰다 떨어지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후보가 돼도 도울 건가요.

“당연하죠. (무릎을) 꿇어야지. 게임에서 져놓고 ‘나는 모르겠다’고 하면 그건 얘기가 안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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