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자율 병행해야/한국 새정부 정책분석/영 이코노미스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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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실명제 실시 자금이탈 이유로 유보/고통분담 국민의 지속협조가 열쇠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2일자)에서 김영삼정부의 정책과 이를 둘러싼 갈등을 분석하고 개혁과 자율화의 방향을 밀고나갈 것을 충고하고 있다. 이 기사를 요약,소개한다.<편집자주>
『지금 우리는 근검절약하고 열심히 일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눈물과 땀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난달 19일 김영삼대통령의 신경제담화문은 이같은 결론으로 끝맺었다. TV연설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성인 시청자의 90%가 국민의 고통분담요청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경제가 뭔지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은 옳을지 모른다. 아직 공식배포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서울에 초안상태로 보도된바 있는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선진국대열에 진입하고 있는 싱가포르나 홍콩·대만 등 다른 아시아의 용들과 달리 모욕적으로 한국을 괌·마카오·뉴칼레도니아 등과 함께 선발개발도상국으로 구분해 놓았다. 지난 80년대 연평균 9.7%라는 성장에 득의만면했던 한국은 그사이 지출이 너무 많았다.
재벌들이 비대화하면서 노동자들은 도전적으로 되어갔고 이들은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고 대규모 파업 등으로 맞섰다.
한국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87∼92년간 생산성은 연평균 10% 상승한데 비해 임금은 18%이상 증가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다른 것이 바뀌지 않는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무역수지 적자폭은 넓어지는 것이 경제적 논리다.
경제학자들은 섬유나 신발같은 저임부문은 포기하고 하이테크(고도기술) 부문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은 아직 그럴만한 하이테크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앞으로 몇년간 「땀과 눈물」을 요구할 필요가 생겼다.
김영삼정부는 단기적으로 중앙은행의 할인율을 낮추고 통화공급을 늘려 성장을 부추기겠다는 「신경제 1백일계획」을 제시했다. 또 그로 인해 나타날 인플레적 경향은 임금과 소득의 자발적인 억제를 통해 막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당분간은 필요한 협조를 얻을지 몰라도 이를 계속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모순된 정책들을 뒤섞고 있다. 유세에서 경제자율화의 촉진과 규제완화를 약속했던 그는 이제 정부명령에 의한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인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은 경제자문팀의 면면으로 보아 김 대통령이 자유경제이론을 따르고 시장을 자율기능에 맡길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중앙집중 계획경제의 망령을 다시 키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혁에 대한 그의 약속은 공허하게 울리기 시작할지 모른다.
그 좋은 예가 모든 금융거래에 대한 가명사용을 금지하겠다던 약속이다. 투자자들이 증시에서 이탈하고 예금자들은 국내에 자금도피처를 찾아나설 것이란 이유로 실명제 개혁은 다시 유보됐다.
집권당인 민자당내 그의 적들에게 있어 이런 모든 것들은 올해 1·4분기 낮은 성장전망 때문에 김 대통령이 정치적 의지를 상실했거나 심지어 겁을 집어먹은 것이란 낌새를 풍기고 있다.
그들은 위축된 경제가 그들이 「위험하리만큼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대통령의 콧대를 꺾기를 바라고 있다. 한번 꺾이기만 한다면 대통령은 그들의 영향을 받게될 것이며 특히 국민들이 희생을 감수하려 하지 않게되면 영향력 발휘는 더욱 쉬워질 것이다.
경기침체가 사람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지만 그 덕에 물가를 잡았고 그로 인해 이제 경제회복을 위한 발판도 마련됐다.
그렇다면 김 대통령은 국내경제에만 매여있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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