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北京서 체포 귀순자 홍진희씨… 파란만장한 탈북 1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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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에서는 '망나니 같은 녀석'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제겐 너무나 소중한 자식입니다."

베이징(北京)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벌이다 지난달 말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된 탈북 귀순자 홍진희(35)씨의 어머니 주영희(55)씨. 어머니는 6일 아들 생각에 끝내 눈물을 보였다.

잡혀간 지 열흘이 넘도록 소식을 알 수 없는 데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설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홍씨가 과거에 '탈북 귀순자를 관계당국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등의 인권유린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정부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게 주씨의 주장이다.

홍콩을 거쳐 1996년 1월 서울에 온 홍씨의 지난 8년간의 인생 역정은 탈북자의 한국 정착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북한군 군무원으로 일하다 93년 탈북한 홍씨는 중국에서 홍콩으로 밀입국하다 체포됐다. 강제북송 위기에 처했던 그는 가까스로 난민 판정을 받아 서울에 왔다.

홍씨는 정착 이듬해인 97년 5월 어머니와 동생 경화(31).진명(26)씨를 함께 탈북시켜 서울에서 가정을 꾸렸다. 탈북 귀순자가 북한의 가족을 데려온 첫 사례다. 홍씨는 정착금으로 어머니에게 작은 식당을 마련해 주고, 중계동 아파트에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하지만 모든 게 낯선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사업 실패로 살림이 쪼들리자 목욕탕의 때밀이까지 하며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 자신이 다니던 학교(고대 중문과)도 중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홍씨는 99년 3월 홍콩에서부터 알고 지내온 여성과의 불화로 인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는 등 불안정한 삶을 이어갔다. 결혼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탈북 전과자'에게는 냉담한 시선만 쏟아졌다.

결국 홍씨는 결혼상대를 찾아보겠다며 지난해 중국으로 건너갔고, 이마저 마땅치 않자 탈북 브로커로 나섰다.

지난달 26일 베이징의 한 가정집에 탈북자 20명과 은거해 있던 홍씨는 중국 공안당국에 덜미가 잡혔다. 할인점의 환경미화원으로 일해 월 73만원을 받아 생활하는 어머니 주씨는 "남북 양쪽에서 적응에 실패한 못난 자식이지만 그래도 한국국민인데 정부가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울먹였다.

이영종.정용수 기자

<사진설명>
1997년 5월 상봉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홍진희씨(中)와 가족들. 먼저 탈북해 서울에 온 홍씨가 1년여의 치밀한 작업 끝에 북한에 있던 어머니 주영희씨와 남녀 동생들을 탈북시켜 김포공항으로 입국해 포즈를 취했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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