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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한 정 의원/한숨돌린 민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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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명결의 앞두고 “표이탈 방지” 한때 부심/의총참석설 나돌자 무기명 투표 않기로
김영삼대통령은 1일 재산공개파문으로 자리가 빈 국회의장과 국방위원장에 이만섭·황명수의원을 각각 전격적으로 내정하는 등 개혁속도 만큼이나 발빠르게 수습에도 특유의 속도전을 발휘하고 있다.
민자당도 그에 호흡맞춰 1일 당기위에 이어 2일 오후 의원총회·당무회의를 잇따라 소집하는 등 정동호의원에 대한 출당수순을 숨가쁘게 몰아치며 개혁의 「걸림돌」 제거에 매진.
당의 「거친」 기세에 눌린듯 반발하던 정 의원은 이날 오전 『죄송하다』며 탈당을 선언함으로써 반란표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긴장하던 당지도부를 한숨 돌리게 했다.
○…오전 11시20분쯤 당사에 나타난 정 의원은 바로 김 대표방을 찾아 인사한뒤 자진탈당 의사를 표명했다.
정 의원이 김 대표에게 고개숙여 인사한뒤 『면목없다』고 하자 김 대표는 김 의원의 손을 감싸쥔채 잠시 눈을 쳐다보면서 침묵.
정 의원은 자리에 앉은뒤 『많은 물의를 빚은데 대해 정말 죄송하다.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 새 대통령의 신한국건설에 동참하겠다. 어제 사실(부인얘기인듯)은 정말 몰랐다』고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얘기. 역시 침통한 표정의 김 대표는 고개만 끄덕이다가 『다른 사람이 흉중을 어떻게 알겠느냐. 안타깝지만 이겨내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라』고 위로.
이때 정 의원의 도착사실을 들은 최 총장이 김 대표방에 들어서자 정 의원이 일어서면서 악수. 최 총장은 『사실상 동향인 셈인데 이번일은 정치변화와 개혁차원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용단을 내려 고맙다』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정 의원은 이에 대해 『김영삼총재의 개혁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며 『특히 아녀자의 좁은 생각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데 대해서는 차라리 죽고 싶은 심경』이라고 부인의 당기위출석 소동을 사과했다.
정 의원의 이날 태도는 1일 「나를 돌로 칠 수 있느냐」는 식의 강한 반발태도와는 정반대여서 하룻밤새 심경변화를 일으킨 배경에 궁금증.
정 의원은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할말이 없다』고 했는데 주위에서는 『정 의원이 부인의 당기위출석소동을 부끄럽게 생각한 것도 한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
○…민자당지도부는 정동호의원 제명결의를 위한 의원총회를 앞두고 1일 오후부터 2일 정 의원의 탈당발표때까지 표결 이탈방지를 위해 노심초사했다.
김종필대표는 1일 저녁 당총무단을 만나 다독거렸고,최형우사무총장도 시내음식점에 시·도지부장들을 소집,표결협조를 당부. 또 2일 아침에는 김 대표와 김영구총무가 당소속 상임위원장·간사·부총무 등 20여명을 국회 의원식당에 모아놓고 조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가슴 아프지만 시대적 요청에 따라 할일은 해야 한다』며 『참고 견디며 나가자. 의총에서 잘 협조해달라』고 인사말.
당지도부는 국회상임위 및 시·도 지부별로 부산하게 표점검을 하는 일방 황인성총리를 비롯,이해구내무·이민섭문화체육·이인제노동·김덕룡정무1장관 등 입각한 당소속 의원들의 집무실에도 연락해 의원총회에 나와 줄것을 요청했다가 자진탈당 소식이 전해지자 급히 취소하느라고 법석.
○…당은 이날 오전 정 의원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희일비.
당지도부는 당초 이날 의총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로 정 의원 제명건을 처리하려 했으나 오전한때 정 의원이 의총에 참석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자 긴장한 나머지 투표방식은 의총에서 정하기로 결정.
최 총장은 이날 오전 『무기명 투표로 정면돌파하겠다. 반발표는 2∼3표밖에 안될 것』이라고 자신했으나 정 의원의 의총참석설을 접한뒤 열린 고위당직자회의는 당헌·당규상 표결방법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은 점을 들어 의총결정에 맡기기로 결론.
이에 대해 강재섭대변인은 『과거 공화당의 의원제명 사실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당의 인사문제는 엄격한 절차를 요구하는 국회의 의사진행과는 다른 문제』라고 후퇴한 입장을 설명.
그는 『당 총재추대 등 고도의 인사문제도 의원들의 의사가 일치될 경우 무기명투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부연.
당이 이처럼 투표방식을 놓고 혼선을 벌인 것은 정 의원이 의총에 참석할 경우 정 의원에 대해 예상외의 동정표가 많이 나와 당의 권위가 실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
당은 그러나 정 의원이 탈당의사를 밝히자 『이제 만사가 잘 해결됐다』고 반색.
○…1일 오전 10시쯤 전날 당기위에서 제명당한 정동호의원이 자진탈당의사를 전해옴에 따라 민자당은 고위당직자 회의가 다시 열리는 등 급박한 분위기속에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정 의원은 이날 아침 일찍 김덕룡정무1장관·서정화의원 등과 통화,자신의 거취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는 후문이다.
정 의원은 오전 9시30분 의원총회를 논의한 고위당직자 회의가 끝난직후 김길홍대표비서실장에게 전화해,「자진사퇴」의사를 밝혔다.
정 의원은 『김종필대표를 바꿔달라』고 한뒤 『본의아니게 누를 끼쳐 죄송하다. 집사람의 행동은 정말 몰랐다.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만 남았다. 곧장 탈당절차를 밟겠으며,당을 떠나도 신한국건설에 미력이나마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곧이어 최형우사무총장에게도 전화해 『신한국창조가 나로 인해 손상을 입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마음을 바꿨다. 의총이 열리기전에 내가 먼저 나가는 것이 애당하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자진사퇴의 결심을 거듭 밝혔다.<노재현·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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