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쉼] 남도 바다에 핀 ‘두 송이 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태평염전의 소금밭

전남 신안군은 오롯이 섬으로만 이뤄진 군(郡)이다. 유인도 72개, 무인도 932개, 총 1004개다. 우리나라 섬의 약 4분의 1이 이곳에 몰려 있다. 재미있는 건 그 숱한 섬들이 제각각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느릿느릿 가는 카페리로 15분이면 닿는 곳이 있는가 하면, 쾌속정으로 2~3시간씩 걸리는 곳도 있다. 드라마 촬영지로 ‘새로 뜬 곳’ 이 있는가 하면, 뱃전에서 어르신들의 뽕짝 파티가 벌어지는 ‘전통의 명소’도 있다. 그 대표 선수를 소개한다.

<증도·홍도> 글·사진=김한별 기자

유람선에서 바라 본 홍도 등대

국내 첫 소금박물관 - 증도

증도는 ‘튀는’ 섬이다. 무안군 해제면~지도~사옥도가 다리로 연결되면서 뱃길이 단 15분 거리로 줄었다. 2010년 사옥도를 잇는 연도교(連島橋)까지 완공하고 나면 ‘섬 아닌 섬’이 된다. 전국 최고, 최초 기록도 몇 개가 된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우전해수욕장은 올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6월 2일) 문을 열었고, 이곳 바닷물은 미네랄 함량이 전국 최고(8680ppm)인 ‘영양수’다. 70년대 사상 최대 규모의 해저 유물이 인양된 ‘신안 보물선’이 발견된 곳 또한 이 섬 앞바다다. 올 봄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여름, 새 명소가 또 한 곳 생겼다.

 사옥도를 떠난 배가 닿는 증도 버지 선착장. 외길을 따라가면 이내 자그마한 단층 돌집이 나온다. 12일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소금박물관이다. 옛 석조 소금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천일염 자체가 희귀한 요즘, 근대 제염(製鹽) 역사를 증명하는 산증인 같은 곳이다. 지난달 문화재청이 태평염전과 함께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내부로 들어선다. 나무로 만든 서까래·천장 등은 옛 모습 그대로지만 전시 시설은 현대식이다. 홀로그램 TV가 있고, 소금 바닥을 스크린 삼아 천장에서 영상을 쏘는 프로젝터도 있다. 천일염과 정제염의 차이, 소금의 역사 등을 알기 쉽게 보여준다. 소금으로 만든 조각, 수차 모형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볼거리도 많다.

 박물관을 둘러본 다음엔 진짜 소금밭을 구경할 차례. 박물관 바로 뒤가 태평염전이다. 한국전쟁 직후 피란민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크기가 약 463만㎡, 국내 최대 규모다. 반듯반듯 바둑판처럼 정리된 소금밭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바닥엔 검은 장판, 그 위엔 송긍송글 피어난 새하얀 소금꽃. 염전 벌판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흡사 거대한 흑백사진 속에 빨려 들어온 듯하다. 직접 소금밭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대파(끌개)로 소금을 그러모으거나 수차로 염수를 퍼 올리는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소금박물관 입장권으로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어이없는 사실 하나. 이곳에서 생산하는 소금은 법적으로 ‘식품’이 아니다. 현행법에서는 화학적으로 가공한 정제염(기계염)만 식품 대접을 받는다. 천일염은 어디까지나 ‘광물’일 뿐이다. 당연히 천일염을 넣어 음식을 만들거나 김장을 담그는 것도 불법이다. ‘염화나트륨 덩어리’인 정제염과 달리 각종 천연 미네랄이 듬뿍 든 ‘웰빙 식품’임에도 말이다. 근대화의 광풍이 빚은 아이러니다. 뒤늦게 천일염을 식품에 포함시키는 법안이 현재 입법 예고돼 있다.

 소금박물관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월요일 휴관)까지.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이다. 박물관 뒤편 매장에서 소금을 사면 관람권 금액만큼을 빼 준다. www.sumdleche.com, 061-275-0829.

홍도를 한바퀴 도는 관광 유람선

‘그때 그 시절’의 추억 - 홍도

증도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오늘의 섬’이라면 홍도는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추억의 섬’이다. 대학생 때 와 보고 십 수년 만에 다시 찾았다는 한 관광객은 “모든 게 그때 시절 그대로”라고 말한다. 새로 들어선 건물도 눈에 거의 안 띄고 구수한 남도 사투리의 사람들 인심도 마찬가지다. 목포에서 오는 배가 쾌속정으로 바뀌고, 눈 밝고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홍도 10경을 홍도 33경으로 부풀려 자랑할 뿐이다.

 홍도가 옛 모습 그대로인 이유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170호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빼어난 절경이 훼손 없이 보존됐지만 번듯한 숙소 하나 새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인근 흑산도까지 호텔이 들어섰는데 홍도만은 아직 장급 여관 아니면 민박뿐이다.

 섬을 둘러보는 관광 코스가 유람선 투어 하나뿐인 것도 옛날과 마찬가지. ‘얼큰한’ 분위기의 유람선 안 풍경도 그대로다. "저건 남문 바위, 이건 촛대 바위….” 청산유수 말솜씨로 승객을 휘어잡는 가이드, 가이드가 쉬는 사이 쿵작쿵작 신나게 뱃전을 울리는 ‘뽕짝’, 그 음악에 맞춰 불콰해진 얼굴로 ‘관광버스 춤’을 추는 단체 여행객들. 유람선이 잠시 선 사이 막회와 소주를 파는 ‘식당 배’가 찾아오는 것도 여전하다. 유람선 승선료는 1인당 1만7000원, 막회 한 접시 2만5000원, 소주 한 병 3000원씩을 받는다.

 틀에 박힌 관광이 싫다면 숙소·횟집이 몰려 있는 1구에서 등대가 있는 한적한 2구까지 섬 트레킹에 도전해 보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상록수 우거진 숲길로 등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제 거리는 멀지 않지만 길이 좁고 험해 현지인을 빼곤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편도 2시간30분 코스. 2구 쪽엔 숙소가 민박 밖에 없으므로 미리 예약하지 않았다면 돌아올 시간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마을을 벗어나면 조명이 따로 없으므로 해질 무렵 길을 나서는 건 금물이다.

TIP

◇증도

■찾아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무안IC를 빠져 나오면 무안읍·지도를 거쳐 사옥도에 닿는다. 지신개 선착장에서 사람과 차를 증도로 건네 주는 철부선(鐵浮船)을 탈 수 있다. 오전 6시50분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여덟 번 운항. 성수기 땐 증편된다. 요금은 1인당 3000원, 차는 중형 이하가 1만5000원(왕복 기준). 지영해운 061-275-7685.

■자전거 여행=소금박물관·우전 해수욕장·짱뚱어 다리 등 주요 관광지에서 자전거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여성용·아동용은 물론 2인용도 있다.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는 증도 옆에 딸린 작은 섬 화도.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다리로 쉽게 건널 수 있다.

■잠잘 곳= 해수 사우나·야외 수영장 등을 갖춘 엘도라도 리조트(061-260-3300)가 있다. 4인실 86㎡A형이 1박에 26만원(세금 포함, 비회원 가격). 하지만 성수기 때는 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 증도사랑 카페(cafe.daum.net/ebr2223)를 운영하는 지역 문화관광해설가 이종화씨(011-644-8882)에게 연락하면 민박이나 텐트촌을 안내해 준다.

■먹거리= 민어가 제철이다. 고향식당(061-271-7533)에선 두툼하게 뜬 회 한 접시를 4만5000원에 내놓는다. 고추냉이 간장이나 초고추장보다는 참기름 친 된장에 찍어 먹는 쪽이 더 어울린다.

◇홍도

■찾아가는 길=목포에서 하루 네 번(오전 7시50분, 8시, 오후 1시20분, 2시) 쾌속선이 뜬다. 홍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요금은 성인 기준 3만2600원. 여름 성수기 때는 배편이 느는 대신 요금도 10% 할증된다. 동양고속 www.ihongdo.co.kr, 061-243-2111~4.

■잠잘 곳=여관과 민박뿐이지만 그나마 성수기 때는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단체 관광객용 숙소를 잡아 놓은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 우리테마투어(www.wrtour.com)에서는 홍도·흑산도를 묶어 2박3일간 돌아보는 상품을 26만5000원에 팔고 있다. 목포까지는 KTX를 이용한다. 02-733-0882.

■먹거리=몇 안 되는 주민이 여관·횟집을 동시에 운영한다. 가장 비싼 자연산 돌돔이 8만∼9만원선이다. 광성횟집 061-246-1122.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