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가구, 디지털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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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980년대 초반, 대기업 기술연구소에 근무하던 코아스웰(옛 한국OA) 노재근(60·사진) 회장은 미국 출장길에 방문한 현지 회사 근무 환경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파티션으로 구분된 책상, 그 위에 컴퓨터와 키보드를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공간, 전화·프린터·팩스 등 전선줄이 깔끔히 정리돼 쾌적한 모습이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사무용 가구를 효율적으로 배치한 것만으로 직원들이 편안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무거운 철제 책상과 의자, 캐비넷이 전부였다. 의자는 앉고 일어설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냈고, 책상은 녹슬기 일쑤였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전산실을 설치하고,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지급하기 시작할 때였다. 노 회장은 미국 사무실을 보며 ‘앞으로 한국에도 컴퓨터가 널리 보급될 테고, 그러면 사무 환경이 이렇게 바뀌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 되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냉장고와 에어컨의 설계·제품개발·생산기술을 맡았었던 터라 물건 만들어내는 데는 자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당산동에 건물을 빌려 1984년 코아스웰의 전신인 한국OA시스템을 설립하고 국내에 사무용 시스템 가구를 처음 선보였다. 이후 23년 동안 코아스웰은 직원 278명, 매출액 768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18일 서울 당산동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노 회장은 “변화하는 업무 환경을 제대로 파악해 이를 반영한 제품을 내놓은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90년대 들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기업의 사무용 시스템 가구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다. 인원이 늘고, 컴퓨터·프린터·복사기 등 사무용 기기가 다양해지면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또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진출이 활발해진 것도 서구식 사무 공간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냈다. 노 회장은 시스템 가구를 “직원의 직무와 동선을 조사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하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코아스웰은 ‘디지털 가구’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였다.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개발한 이 가구는 설계 단계부터 원격화상회의, 인터넷 전화, RFID를 활용한 개인 보안 등 디지털 기술과 조명·소음까지 조절할 수 있는 최첨단 기능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digital)과 가구(furniture)의 합성어인 ‘디지처(digiture)’를 브랜드로 했다.

 노 회장은 “가구는 사양산업이 아니라 오히려 최첨단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사양 제품을 내놓는 것이 바로 사양산업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재료비와 인건비로 가구를 만드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싸움입니다. 전자제품과 가구가 융합된 유비쿼터스형 가구가 코아스웰이 나아갈 방향입니다.”

 그는 사무용 가구 시장의 전망이 밝다고 했다. 기업들이 사무 환경을 개선하는 데 투자를 늘려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사무 환경을 좋게 바꿔주는 게 직원들에게 가장 큰 보상이라는 점을 기업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 회장의 목표는 “직원들이 회사에 늦게까지 있고, 또 출근하고 싶어질 정도로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코아스웰은 올해 매출 목표를 40% 늘려 1100억원으로 잡았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해 있던 영업을 전국으로 넓혀 지난해 지역본부를 5곳 만들었다. 2000년대 들어 수요처를 다각화해 학교와 병원, 관공서, 군부대 등에도 납품하고 있다.

또 99년 미국에 첫 수출한 이래 지금까지 12개 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앞으로 신규 시장을 더 넓힐 계획이다. 가구는 경제 상황에 민감한 품목이기 때문에 수출을 다변화해 서로 보완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서다.

 노 회장의 꿈은 사무용 가구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가구의 영역이 어디까지라고 한계를 지어본 적이 없습니다. 한 건물 안에 들어가는 모든 제품을 디자인하고 이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가 될 때까지 열심히 뛰겠습니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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