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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영원한 연습/돈연(종교인 시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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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불혹의 나이를 지났다. 태어난지 반세기 가깝다.
그래도 영 서툰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참는 일,불교에서 말하는 인욕행,또는 인욕바라밀이다. 껑충껑충 뛰다가 멈칫 서서 이 나이에 이렇게 뛰어도 되나 싶어 점잖게 걷다가 금세 잊어버리고 쏜살같이 달리는 것이 내 등산길의 습관이다.
참고 견디며 쉬엄쉬엄 하는 식의 인욕은 늘 생각뿐이다.
○참는 것이 삶의 진면목
삶이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많은 것들의 집합으로 이뤄진다. 같은 것끼리만 섞여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고유의 성질을 지닌채 인내를 발휘하고 있는 총체적 모습이 바로 삶이다.
그래서 『금강경』은 삶의 진면목을 「참음에서 이뤄진 것」이라 했다. 『사십이장경』도 스무가지의 어려운 일 가운데 욕됨을 보고 참기 어려움을 으뜸으로 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사람을 보기만 하면 예배하고 칭찬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깊이 존경합니다. 절대 거만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는 보살도를 행해 반드시 진실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어떤 이들은 화를 내고 곡해해 몽둥이나 돌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는 얼른 피하여 도망한 다음 큰 소리로 『나는 당신을 깊이 존경합니다. 절대 거만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는 보살도를 행해 반드시 진실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외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상불경(누구든지 가볍게 여기지 않음)이라 불렀다.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의 얘기다. 하는 일 없이 칭찬받는 것은 분명 부그러운 일이지만,남을 칭찬할 줄 모르는 것 또한 참으로 가난한 일이다.
참는 바라밀이 어찌 단숨에 이루어지리요. 생을 두고 끊임없이 계속해야 하는 것. 생각하나 거둬 잡아들이기를 수억번 반복하는 화두일념의 참선도 따지고보면 으뜸가는 인욕행이다.
몸의 온갖 행위를 앉음새 하나로 귀결시키고,거기 온전히 나타낸 정신의 모든 것을 자기화하는 선의 정진이야말로 인욕행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말했다. 공부는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나는 내 생애를 통해 늘 그랬지만 나 자신 끊임없이 연습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첼로를 새가 나는듯이 쉽게 연주한다고 말한다. 새가 날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이 첼로를 연습했는지 알고 있다.
쉽게 연주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어마어마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능숙함이란 항상 최대한의 노력에서만 이루어진다. 예술은 고통의 산물이다.
○노력이 정상의 지름길
산을 가다보면 다리가 아프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식으로 폭포도 있고 절벽도 있고 예쁜 돌이 있는 곳을 골라 쉰다. 폭포가 있는 그런 곳이면 반드시 물이 흘러 휘돌아나가는 곳이 있다. 비가 오거나 눈녹은 물이 불어나 물살이 세지면 물은 한바탕 휘돌아 절벽을 때리고 그 흐름의 원심력은 물에 섞인 모래를 건너편 모래톱에 쌓이게 한다.
계곡물이 비교적 조용한 봄이나 가을에 그런 곳에 서면 절벽과 물과 모래들이 각기 인내를 거느리고 고즈너기 정좌하고 있음을 본다. 수없는 휘몰아침의 반복과 휴식의 인내가 뜻없는 곳들에도 그렇게 있다. 하물며 복잡다단한 우리의 삶 그 어디인들 이랴.
오늘은 음력으로 3월 초사흘. 남쪽에는 동백이 져내리고,산 동백이 핀다.
봄 밭갈이도 벌써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곳 두타산 자락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다 말고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씨다. 아직도 북향 골짜기에는 키를 넘긴 눈이 녹지않고 있다. 긴 겨우내 눈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가꾼 야생화들이 따스함을 기다리고 있다. 춘분이 지난지도 닷새째,이제 무성한 여름은 눈 녹아 흐른 물이 흐름되어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다. 참으로 자연은 잘도 참으며 끊임없이 길을 가고 있다.
○인생은 찰나의 되풀이
이 위대한 사실 속에 때로 기뻐하고 때로 슬퍼하는 작은 내 존재가 있다. 진실로 큰가,하늘을 덮고도 남는다. 진실로 작은가,바늘 들어갈 틈도 없다. 인생의 의미가 이렇다면 삶은 결코 무엇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정점에서,분명 찰나적이고 순간적인 되풀이,인생은 그런 것,그것을 참을 수 없으면,카잘스의 말처럼 고통의 산물이 아닌 쾌락의 대가로 전락할 뿐이다.
봄눈은 참으로 희다. 겨울눈에 비하랴. 무엇을 완성하겠다는 말인가. 그저 한번 더 되풀이가 있을 뿐.<두타초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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