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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맨유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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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맨체스터의 무질서한 군중들이 거리에서 풋볼을 하다가 건물 유리를 깨고 툭하면 난동을 부리는 폐해가 심하다. 이에 본 법정은 거리 풋볼을 금한다.” 1608년 내려진 영국 맨체스터 영주 재판소의 풋볼 금지령이다. 요즘과 달리 축구와 럭비를 합친 듯한 ‘패거리 풋볼(Mob football)’이었다. 별도의 경기장은 물론 90분 같은 제한시간도 없었다. 규칙이라면 ‘무기를 쓰지 말라’는 정도. 공을 차다 보면 한 편이 20~30명으로 불어나기 일쑤고 종종 패싸움으로 번졌다. 극성스러운 축구 열기가 300년 뒤인 1910년 영국 맨체스터에 세계 최대의 축구 전용구장을 들어서게 했는지 모른다.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홈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다.

7만6000명을 수용하는 이 시설은 경기장이라기보다 거대한 테마파크다. 성공 비즈니스의 아이콘이 된 ‘맨유 마케팅’의 본산이자 세계 최고 ‘프리미어 리그’의 상징이다. 세계적 스타들의 라커룸 같은 시설들을 아기자기하게 돌아보는 투어 요금이 2만원을 훌쩍 넘는데도 한 해 25만 명이 몰린다. 해외 지사와 자체 방송국을 두고 회원카드까지 만들어 지구촌 곳곳에 7500만 명의 열렬한 ‘맨유 서포터’를 키웠다. 그 절반 이상은 아시아인들이다. 한국의 박지성, 중국의 덩팡저우 선수를 식구로 들인 것 역시 아시아 마케팅의 연장선에 있다. “스포츠 경기는 아무리 졸전을 벌여도 팬들이 입장료를 환불받지 못하는 제품이다.” 20년 넘게 맨유를 이끌어 온 명장 퍼거슨 감독이 늘상 되뇌는 고객만족 철학이다. 경기를 박진감 있게 만들 창조적 스타 플레이어는 거액을 들여서라도 영입해야 한다고 구단 측과 으르렁거리는 게 그의 일과다.

맨유의 핵심 콘텐트는 호화 스타 군단의 막강 공격 축구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이자 열혈 축구팬인 시오노 나나미는 공격 축구의 짜릿함을 알렉산더나 카이사르의 강렬한 전투 장면에 비유했다. 맨유는 ‘축구가 지닌 폭력·야만성을 현대적으로 가장 세련되게 순화한 팀’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맨유가 한국 땅을 처음 밟아 20일 서울 상암 구장에서 국내 팀과 친선경기를 한다. 약체 바레인에도 허물어지곤 하는 우리 국가 대표팀이 루니나 호날두의 화려한 공격축구에서 한 수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만년적자에 시달리는 ‘돈 먹는 하마’ K리그가 맨유의 ‘공격 마케팅’까지 눈여겨보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