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직장인(5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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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많은 주부들이 직장 갖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는 주부는 드물다. 취업일선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설령 아이들의 교육이며 가사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직종이 마땅치 않다.
피아노 조율사 윤기복씨(38). 그는 이런 주부취업의 난관을 전문기술로 뚫은 사람이다. 『남편은 밖에서 활발히 뛰는데 집안에만 박혀있으니 열등감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그렇다고 내성적인 제 성격으로 세일즈에 뛰어들 수도 없었고요』
결혼생활 10년이 다 돼갈 무렵 윤씨는 집안 탈출의 욕구를 강렬치 느꼈다고 말했다.
88년 봄 그는 가족 누구와도 상의 없이 집 근처의 한 피아노조율학원에 수강신청을 했다. 귀가 밝고 꼼꼼한 성격의 윤씨는 피아노 조율이 자신의 적성에 맞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는 곧 학원등록을 눈치챈 남편의 방대에 부닥쳤다 『먹고살기 힘든 것도 아닌데 남보기 창피하다. 공구 (조율용)를 없애버리겠다』 는 남편의 위협(?)이 뒤따랐다.
남편과의「투쟁」은 근 1년 동안 간헐적으로 계속됐지만 윤씨는 피아노 조율이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게 느껴졌다. 학원 강사는 물론 40여명의 주부동기생들도 그를 보고 『음감이 뛰어나다』며 칭찬했다. 신이 난 그는 6개월인 정규수강코스틀『좀 더 잘 배워보고 싶다』 며 4개월쯤 더 늘려 마쳤다. 반음의 1백분1을 어렴풋이 잡아낼 수 있게된 것도 이 때쯤.
학원수강을 마친 윤씨는 명함을 찍고 영업개시에 들어갔다. 시간 자유조절·고소득 보장」이라는 조율사를 택할 당시의 꿈은 그러나 이내 환상으로 드러났다. 가정용 피아노의 경우 건당 조율비는 4만원선 작업시간은 2∼3시간. 개업 초기 애틀 써봐야 알음알음으로 한 달에 서너건 조율을 소개받는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윤씨는 일거리가 없을 때는 딸의 피아노를 이용, 조율훈련을 하는 등 실망하지 않고 노력했다 .덕분에 그는 지난해 초 조율기능사 2급 시험에 무난치 합격하기도 했다. 이 시험은 총 응시자중 10% 안팎이 최종 합격하는 깐깐한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윤씨는 『시험에 합격한 뒤 조율에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고객들의 평가도 크게 좋아져 단골 손님도 부쩍 늘었다. 이에 따라 월 평균 수입도 70만 원선을 넘어서 가계에 쏠쏠한 보탬이 되고 있다.
그는 요즘 큰 성취감으로 젊어지는 것 갈다고 말한다. 『피아노의 맑은 음과 함께 주부 우울증이 싹 사라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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