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칼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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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2014년 겨울올림픽 최종 선정지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올라왔을 때 한국인들은 숨을 죽였다. 한 번의 좌절과 두 번의 도전이 결실을 보아야 한다는 한국 유치단의 각오가 장내를 덮었다. 짧은 긴장의 순간이 ‘시티 오브 소치’를 발하는 그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와 겹치자 한국인들의 마음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러시아 진영의 환성이 터졌다. 한국인 유치단은 엎드려 울었다.

  평창의 상대는 겨울에도 수영과 스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그 절묘한 기후를 앞세운 소치가 아니었다. 외교대국 러시아였고, 제정러시아와 사회주의 종주국의 화려한 지위를 회복하고 싶은 국민적 기대의 주역 푸틴 대통령이었다. 푸틴의 세(勢) 과시는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부시 부자(父子) 대통령이 보는 가운데 푸틴이 낚아 올린 줄무늬 배스가 AP 통신사의 앵글에 잡혔고, 거점국을 상대로 한 거액 투자건이 속속 국제뉴스로 타전되었다. 그의 말과 행보는 위력적이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에너지 운명을 쥐고 있는 가스프롬의 실질적 결정권자가 바로 푸틴임은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볼품없는 시골 휴양촌을 멋진 스포츠타운으로 변모시킬 것을 ‘약속한다’는 그의 연설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었다. 시비는커녕 그가 주무르는 천문학적 액수의 오일달러와 연을 끊고 평창을 고집할 순정파는 드물었을 것이다. 특히 유럽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랬다. 그래서 푸틴의 카리스마에 투항한 열 표 정도가 전세를 역전시켰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푸틴의 상대역’도 오일달러도 없이, 부활하는 거인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한국의 작은 지자체가 그 정도의 성적을 올렸다면 칭찬받을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생각은 크렘린궁이 위치한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을 걸으면서 더욱 짙어졌다. 그곳에는 부활하는 러시아의 자존심이 있었다. 시장개방 기세에 짓눌려 잠시 주눅 들었던 ‘헤게모니’에 대한 강한 향수가 러시아정교 사원의 첨탑마다 번득였다. 무너진 것은 배급질서와 계획경제였을 뿐, 정교하고 단단한 관료사회의 통제수단들이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남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로 어수선한 생활양식을 거뜬하게 관리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초현대식 빌딩이 초고속으로 건설되고 있는 현장 옆에서 교통경찰은 신호위반 차량을 노려 생활비를 뜯어냈고, 정부가 막대한 오일달러를 강성대국 프로젝트에 쏟아 부어도 이의를 제기할 시민사회 세력은 아직 요원했다. 국가사회주의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국가자본주의’를 일사불란하게 통치하는 정부의 힘, 그것이 푸틴의 카리스마이자 시장유입에 대한 러시아적 방책이었다. 지중해 연안의 작은 마을에 12조원을 투입하겠다는 푸틴의 포부에 한 발이라도 걸치고 싶은 IOC 위원들에게는 ‘남북 단일팀 안’은 20세기적 낭만으로 들렸을 것이다.

  이런 거북한 심정을 달래준 것은 다름 아닌 모스크바 심장부에 파고든 한국 기업들이었다. 붉은 광장으로 향하는 많은 차량이 ‘HYUNDAI’였는데, 탑승객들은 수십 개 난간을 수놓은 LG 입간판들을 열병하면서 ‘LG다리’를 건너야 하고, 곧 이어 레닌 도서관 위쪽에 우뚝 선 ‘SAMSUNG’ 옥외간판을 읽으면서 로터리를 돌아야 한다. 외면할 수도 있겠지만, 삼성은 이미 휴대전화 시장을 26%나 점유했으며, LG는 가전시장에서 유력한 경쟁사로 부상했으니 어지간한 소비자라면 유혹을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독점자본이 개화한 곳에 혁명이 일어난다고 잘못 예상한 세기적 혁명가 레닌의 저작들을 신주단지처럼 모셔둔 레닌 도서관을 한국의 ‘독점자본’이 둘러싸게 된 비책은 무엇인가. ‘재벌개혁’도 좋지만, 한국 정부와 정치가들이 그 비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표명했다면 러시아와의 싸움에서 승부수를 찾아냈을 터인데 말이다.

  두 번의 좌절, 그것도 박빙의 고배였기에 재도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될 만하고, 또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삼수(三修)가 흔히 있는 일이기에 안 될 법도 없지만, 그것이 지자체장의 역점사업이거나 특정 기업 ‘회장님 프로젝트’로 한정되어서는 승산이 없다. 일단,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라면 국가프로젝트가 되어야 쓰라린 전철을 밟지 않는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