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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인물”부터 차근차근/김 대통령의 「과거청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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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여론업고 소리없이 「손보기」/포철 세무조사로 자연도태 박태준/안기부정리로 무력화 시작 박철언/노 전 대통령 처족 대접에 관심
지난 주말 민자당최고위원이었던 박태준포철명예회장과 부총리출신 조순한국은행총재가 나란히 공직을 떠났다. 그에 앞서 5공의 실력자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구속됐으며,김진영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국군기무사령관이 전격 경질됐다.
김영삼대통령의 5,6공청산작업은 이렇게 사람바꾸기로 시작됐다. 새정부의 과거청산은 무자비하게 숙정했던 5공의 사정작업과 다르며,여소야대국면에 마지못해 끌려간 6공의 5공청산과도 다르다.
김 대통령은 평소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김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가장 먼저 사라진 인물은 정주영 전 국민당대표다. 정씨는 한때 김 대통령의 대권장악을 위협했을 뿐아니라 대선기간중 김 대통령의 「코털」을 가장 많이 건드린 사람이다. 김 대통령은 정씨의 행태를 라이벌간의 경쟁이나 적대감 표시로는 보지 않는다. 그는 정씨를 「한국병」의 대표적 사례로 간주했다. 재벌이 정권을 쥐려는 당치도 않는 일을 벌여 온갖 분야에 해독만 끼친 존재란 것이다. 때문에 정씨를 적절히 응징하는 것이 국민정서에도 맞을뿐 아니라 「확실히」 제2,제3의 정주영 등장을 막는 첩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독대요청 모두 거절
김 대통령의 이같은 의지를 읽은 정씨는 동생 정세영현대그룹회장을 보내 김 대통령에게 사죄했고 모든 인맥을 동원해 「독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김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김 대통령의 피를 말린 세사람이 있다』고 말한적이 있다. 세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정씨와 박태준 전 포철회장,박철언의원인 것으로 짐작된다.
○“피말린 세사람 있다”
박태준 전 회장은 김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사이에서 항상 김 대통령을 괴롭히는(?) 입장에 서있었다. 후보경선을 포기했지만 그는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던 김 대통령의 청을 거절하고 이종찬 편을 들었으며 정주영 당시 국민당후보와 만나 지원을 약속했고,민자당 탈당의원들은 국민당에 가도록 막후에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회장 역시 대선후 여러인맥을 총동원해 김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하는 등 연명을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면담은 성사되지 못했으며,포철에 대해 세무사찰이 시작됐다. 불안과 초조속에 계속 국내외를 들락거리던 박 전 회장은 마침내 25년간 자신이 만들고 일궈온 포철에서 손을 털고 일본으로 떠났다. 주총결과 박 전 회장의 측근들까지 비명한번 못지르고 추방(?)됐다.
이 과정에서 김 대통령은 『25년 장기집권으로 포철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단 한마디로 박태준 사단을 무력화시켰다.
박철언의원은 일거수 일투족이 김 대통령에게 「괘씸한」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때문에 박 의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특수관계를 내세워 최대한 방어하고 화해하려 시도하고 있지만 고사의 표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정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박 의원은 아직 신병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없다. 하지만 민자당의 한 민주계의원은 『박 의원에 대한 실질적인 무력화작업은 안기부에 대한 정리작업으로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5,6공을 거치면서 박 의원은 노 대통령과 안기부를 최대한 활용해 힘을 썼다』고 말한다.
민주계의원은 『어려운 환경에서 평생 야당을 해온 김 대통령에게 있어서 「의리」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따라서 인간적 배신감은 그가 참기 힘든 부분일 것』이라고 말한다.
○조 총재 경질 감정설
조순한은총재의 해임은 이들 3명과는 사정이 다르다. 조 전 총재가 「한국은행 3천억원 민자당 선거자금 발권설」을 주장한 정주영씨를 고소했을때 김 대통령은 조 총재를 무척 고맙게 생각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덕도 봤다. 그러나 조 전 총재가 아무 상의없이 소를 취하하고 정씨를 용서했을때 김 대통령은 진노했으며 동기를 의심했다고 한다. 조 전 총재를 고문으로 추대하는 격식을 갖추고 「새정부의 경제팀정비」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조 전 총재의 경질에 대해서는 「감정차원」이라는 해석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아무튼 위의 4명은 김영삼식 과거청산의 한 유형을 제시했다. 가뜩이나 기득권층과 노 전 대통령측근,특히 노 전 대통령 처족에 대해 평가를 낮추고 있는 김 대통령이 앞으로 김복동·금진호·이원조씨 및 선경 등을 어떻게 다루거나 대접할지에 대해 정가에서는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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