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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교수 출신의 초전/하스불라토프 러 의회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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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옐친 타도 선봉… 새강자 부상
러시아 인민대표대회가 4일동안의 열전 끝에 13일 폐막됐다.
이번 회의는 보리스 옐친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해온 국민투표안과 권력분점안을 모두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포고령 발동권까지 박탈했다. 이번 회의를 통해 명실상부한 대통령 중심제 도입 발판을 다지려던 옐친대통령은 오히려 「법적으로」무장해제 당한 셈이다. 옐친진영은 이번 대회를 헌정쿠데타로 단정하고 있다.
반면에 이번 대회는 새로운 강자를 탄생시켰다. 바로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의장(인민대표대회의장 겸임)이다. 그는 이번 회의에서 옐친대통령을 옭아매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올해 50세의 하스불라토프의장은 3년전까지만 해도 뚜렷한 지지기반 없는 정치신인에 불과했다. 90년 정계데뷔전까지 모스크바 인민경제대학 교수였다. 게다가 카프카스산맥 깊숙이 터잡은 소수민족 체첸족 출신이다. 그를 정치거목으로 키워준 것은 다름 아닌 옐친대통령이다.
초선의원 하스불라토프는 90년 5월 엘친의 후원으로 러시아 최고회의 부의장이 됐고 이듬해 6월 옐친이 러시아 최초의 민선대통령이 되자 의장직을 물려받았다.
그해 8월 보수파 쿠데타가 일어났을때,그리고 옐친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과 힘겨루기를 벌일때 그는 옐친편에 섬으로써 옐친에게 진 정치적 빚을 갚았다.
그러나 소련 해체후 그는 차츰 옐친과 불화를 빚기 시작했다. 급진개혁을 주장하는 옐친대통령에게 그는 온건개혁을 주문했다. 또 옐친대통령이 의회를 무시하고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체제개편을 서두르자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대의원들의 반옐친 감정을 부추기며 대항했다. 지난해 11월의 이즈베스티야지 통제권 분쟁,12월 제7차 인민대회를 거치면서 기세를 잡은 그는 이번 대회에서 옐친대통령으로부터 거의 모든 것을 빼앗다시피 했다.
하지만 하스불라토프가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다. 옐친대통령이 이번 대회 결과와 상관없이 대국민 직접호소 등 장외투쟁을 통해 「내가 진짜 왕」임을 확인하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하스불라토프는 소문난 독설가다. 인민대회에 출석한 장관들을 「버러지 같은 놈들」이라고 욕설,장관들이 집단퇴장 하는 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외국원수와 만나 『옐친은 무능한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는 등 자리를 가리지 않고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댄다. 회의도중 의원들의 발언이 맘에 들지 않으면 심한 욕설과 함께 마이크를 꺼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러시아적인 정치인」이란 소리를 듣는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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