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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숙하는 공직사회/세상 달라지고 있다(새바람 개혁바람: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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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내식당 만원 민원인엔 “미소”/청와대의 변화 말단까지 파급/정권 초기 통과의례 안되어야
시위꾼이 등장한 청와대 앞길과 공무원들이 발을 끊은 골프장은 김영삼정부 등장이 우리 사회에 미친 두 극단의 사례라 할만하다. 불과 19일밖에 안된 신정부의 출범 이후 정계·관계는 물론 각계에서는 광범하고도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일종의 김영삼 충격증후군이랄 수 있다. 이런 현상이 구조적으로 정착할 것인지,정권교체후 사정폭파의 단골현상일지는 좀더 두고봐야 알 것이다.
그러나 신선하고 강도높은 증후군은 우리가 계속 가다듬고 뿌리내려야 할 과제임이 틀림없다.<편집자주>
황인성총리는 요즘 별도의 행사계획이 없는 날은 거의 정부종합청사 구내식당에서 관계장관이나 총리실 간부들과 점심을 든다. 각종 조찬·오찬·만찬을 겸한 국무위원들 회의도 종합청사 구내식당에서 주로 열린다.
장·차관뿐 아니라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공무원 숫자가 부쩍 늘었다. 3천8백여명이 근무하는 광화문의 제1청사는 5백68석의 구내식당에 하루 평균 1천2백명이,6천6백명이 근무하는 과천청사의 2천3백석 식당은 하루 평균 3천7백명이 이용한다.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두 10% 이상씩 늘어난 것이다. C모장관은 13일 낮 민자당 L모의원 딸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고 5만원의 경조환만을 보냈다.
고위공무원들의 골프장 출입도 눈에 띄게 사라졌다. 불가피하게 유흥업소에 출입해야 할 경우엔 장관이나 차관에게 미리 얘기해 허락을 받기도 한다.
변화의 바람은 직위고하를 불문하고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방부는 장관이 청사 밖으로 나올때 헌병이 신호 등을 무시하고 차량통행을 통제하던 일을 중단했다. 현역 육군준장이 겸직한 총무과장과 근무지원단장을 분리,20일부터는 총무과장을 일반직 서기관으로 보임했다.
○골프장 출입 자제
군의 변화는 군인들의 마음에서부터 더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듯 하다. 장관·육참총장·기무사령관의 기용에서 이른바 하나회 등 정치군인들을 과감하게 배제한 사실이 많은 사람을 고무시키고 있는듯 하다. 군의 한 장성은 『우리 군의 가장 큰 문제는 30년 군부집권 아래서 만군의 부패,일군의 권위,미군의 풍요가 나쁘게 상승작용을 한데에 있다』며 『거기엔 하나회의 인사장악이 큰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다수의 군인들은 문민정부의 등장이 정치군인들의 인사장악을 차단하고 군을 현대화 하는 정책과 비전을 잣대로 사람을 고르고 잘못된 관행을 깨주기를 바라고 있다.
김 대통령은 지난 13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대화에서 『요즘 언론사에도 많은 정보가 들어가는 모양이지만 청와대만큼 많이 오는데가 없다』며 『지금까지 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을 못한 것은 실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맨 꼭대기부터 솔선수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잘라말했다.
○군내 분위기도 일신
부패척결에 앞장서겠다는 김 대통령의 의지는 현재로서는 모든 가치에 우선해 자리잡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는 『대통령의 윗물 맑기 실천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나는 모든 것을 걸고 이것을 달성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목표가 깨지지 않는한 적어도 고위공직자는 달라지거나 달라지는척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YS식 혁명이 거세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앞길·인왕산 개방,안가철거,지방청와대 폐쇄 등 대통령이 취한 일련의 조치는 각종 중앙·지방행정기관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5년 적립식 목적신탁에 가입,매달 월급의 30%를 붓기 시작했다.
청와대에서의 오찬과 만찬은 설렁탕과 칼국수 등으로 제한했다. 집무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오전 7시40분부터 집무를 하니 모든 사람이 덩달아 부지런해지지 않을 수 없게됐다.
의전·경호절차도 달라졌다. 모든 행사의 경호원이나 수행비서는 절반 이상 줄었고 대통령 주재회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5분전에 대기하고 비서실장이 2분전에 입장하던 관행도 고집하지 않는다. 지방행사도 가급적 당일치기로 끝내 지방관서의 비용이나 부담을 줄이고 있다.
청와대의 변화가 말단 공직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김포공항의 예를 통해 보자.
○설렁탕과 칼국수
김포국제공항은 작은 정부라고 불린다. 20여개의 정부부처가 파견근무를 하고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치안본부와 시경에서 따로 분실을 두었을 정도였다. 본래의 일 이외에 안면으로 편의를 봐주어야 하는 일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달부터 매주 한차례 열리는 기관장회의에 안기부·기무사 분실장은 참석하지 않고있다. 각 기관은 서로 회의를 열어 고유업무 외에 편법을 동원하지 않기로 결의했다는 소리도 있다.
전국의 경찰서·세무서 등에서도 민원인을 대하는 자세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달라지고 있는 사례는 일일이 예거할 수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같은 공직사회의 쇄신움직임이 역대 정권 출범초기에 한차례씩 나왔던 상례적인 통과의례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만은 대통령에서부터 일선 공직자까지 경계와 자정의 끈을 늦추지 않는 「문민혁명」이 이루어질 것인지 국민들은 기대속에 지켜보고 있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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