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타협의 장 찾는 여야/민주 이 대표체제 출범후 새관계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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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정부 정통성시비 없어 선의 경쟁자로/수뇌회담·「용공」 사과요구 등 걸림돌 남아
민주당이 이기택대표체제로 새롭게 출범함으로써 앞으로의 여야관계에 관심이 쏠린다.
민자·민주 양당의 지도부는 한결같이 문민시대에 걸맞은 성숙한 여야관계를 약속해 기대감을 주고있다.
관측통들은 새정부가 개혁정책을 무리없이 추진해 나간다면 여야간 동반자관계가 한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그러면서도 오랜 타성과 약간의 복잡한 당내사정이 발전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문민정부의 출범은 정치문화 전반의 혁신도 강요하고 있다. 투쟁과 일방통행의 극한대결로 얼룩진 과거 여야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과 국민적 압박때문에도 여야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 관측도 있다.
변화는 민주당 전당대회와 이기택대표에 대한 당선축하장면에서부터 느껴지고 있다. 전당대회에 김덕룡 정무1장관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주돈식 정무수석비서관을 보낸데 이어 직접 전화까지 걸어 당선을 축하하고 협조도 부탁했다. 이같은 행위는 의례적인 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안정되는대로 만나자』는 등 주고받은 대화에서 어딘지 모르게 예전엔 느낄 수 없었던 서로간의 호의를 발견하게 된다.
이 대표도 『새정부가 개혁에 대한 참된 의지를 보일때 서슴없이 협력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고 당선 기자회견에서 「협조」를 강조했다. 물론 『개혁이 지체·실종될때는 행동으로 대항할 것』이라고 단서를 붙이긴 했으나 정부를 향한 야당대표의 취임 일성으론 3공이래 보기드문 화음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과거 야당에서 벗어나 국정에 능동적으로 참여,대안을 제시하는 변화된 야당』(1월15일 당 정책협의회),『여야관계를 선의의 경쟁과 협력관계로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여야모두의 자세전환이 필요하다』(신년기자회견)고 역설,국정 동반자로서의 새로운 야당상을 제시한바 있다.
민자당의 최형우 사무총장도 『앞으로 여야가 대화를 통해 정치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겠으며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멋진 정치를 보여 주겠다』(12일 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한 논평)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다짐하며 화답하고 있다.
새정부가 과거 정부(정권)와는 달리 정통성시비에 휘말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발전적 여야관계의 촉진에 기여할 전망이다. 정통성시비 때문에 집권당은 야당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고 야당은 집권당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국민들로부터 존재가치를 인정받던 시기가 지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민자당에는 이제 민주당을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총선과 대선에서 민자당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진정한 야당으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야당도 이제 정부·여당의 비민주성을 부각하기만 해도 반사이득을 얻던 때가 지났음을 절감하고 있다. 정책과 노선으로 여당과 피나게 경쟁해야 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호의적·전향적 분위기대로 여야관계가 발전돼 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새체제의 여야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될 양당 수뇌회담과 4월 임시국회 등에서 여야가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특히 양당 수뇌회담 형식을 놓고 시작된 양당의 신경전부터가 눈에 거슬린다. 민주당은 김 대통령과 이 대표의 영수회담을 제의해놓고 있는 반면 민자당은 선대표회담 후영수회담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민자당쪽에선 이 대표의 격을 끌어 내리려는 의도가 다분해 민주당도 이를 문제삼고 있다. 따라서 첫 작품부터 「본질」을 벗어난 「형식」문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표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은 잡았지만 취약한 지지세력의 노출때문에 오히려 끝없는 당권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든 것으로 보이는 측면도 대여관계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이번에 자신의 당선에 결정적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이는 김대중씨에게 어떤 형태로든 은혜갚음을 해야한다는 점도 이 대표에겐 부담이다. 이 대표가 반대편 또는 경쟁적 입장에 있는 당내세력을 하나로 뭉치지 못하도록 하면서 원만한 대여관계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또 정부·여당이 개혁의 고삐를 바짝조이는 것과 관련해 『우리가 보수정당이 되고 민자당이 개혁정당이 되는 것 아니냐』며 당의 확실한 노선정립을 바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민주당은 당분간 자신들에게도 개혁의지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여권내 반개혁세력들을 비난해 간접적으로 김영삼정부의 개혁작업을 도와주면서도 민자당측에 지자제의 즉각실시·보안법폐지·용공음해 사과를 강력히 요구하는 이중적 자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이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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