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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출판』또다시 기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출판계의 고질적 병폐인 중복출판이 가벼운 책읽기 바람을 타고 또다시 성행하면서 건전한 독서풍토를 해치고 있다. 잘 팔리거나 영화로 상영되는 소설 등 외국번역물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었는 이른바 중복출판의 문제점은 조잡한 번역과 내용의 왜곡 문제를 넘어서 출판풍토를 크게 오염 시킨다는 점이다.
중복출판은 문고판·전집류·아동용·단행본 등 전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었는데 제대로 된 번역으로 전집을 다시 만드는 경우나 아동용으로 쉽게 편집하는 경우는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단행본 분야로 어느 한권이 팔리는 기미만 보이면 수십개 출판사들이 짧은 시간내에 뒤따라 급조해 내는 바람에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
특히 시간에 쫓겨 한권의 책을 여럿이 나눠서 하는 짜집기 번역, 번역이 쉬운 일본판 중역등은 독자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개 이상의 출판사가 중복 출판한 책만해도 50여권에 이르고 있다. 최고의 중복출판은『어린왕자』로 무려 63개사가 참여했다. 다음은『논어』50개사,『데미안』41개사,『명심보감』37개사,『좁은 문』28개사,『삼국지』27개사등으로 집계됐다.
이밖에 최근 저작물로는 미국에서 「무조건 팔리는 작가」로 불리는 시드니 셸던의 전작품이 21개 출판사에 의해 번역돼 나와 있다. 중복출판을 주로 하는 출판사들은 특히 영화가 상영되면 같은 내용의 소설을 골라 민첩하게 번역 혹은 번안 구성해 서점가에 내놓는데 영화가 히트하면 소설도 같이 팔리는 현상이 잦기 때문에 이런 행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영화소설은 영화사가 소유하고 있는 출판사에 의해 출판되는 경우도 있는데 6백∼7백만원의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상당한 영화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예로 현재『시티 오브조이』가 5종,『연인』이 9종,『제3공화국』이 4종,『드라큐라』가 2종 나와 있다.『제3공화국』『드라큐라』의 경우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과거에 출판됐던 책을 제목만 바꿔 다시 내거나 원작이 아닌데도 제목만 같게 붙여 출판한 경우다.
심지어 시나리오만 있는 영화를 직접 보고 소설로 써내 번역판인 것처럼 서점에 내놓는 경우도 있다.
중복출판이 성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개 큰 돈은 못 벌더라도 기본 부수는 쉽게 넘긴다는 사실이며 지방의 경우 특히 수익이 짭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출판사들이 쉽게 손대고 있다.
이같은 중복출판은 엄청난 출판자원 낭비로도 지적되고 있는데 사실상 법적 규제가 불가능해 더욱 문제다. 중복출판은 우리나라가 국제저작권 협약에 가입한 87년 이전의 책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피해가 심각해도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출협측도『이번에 중복출판실태를 조사는 했지만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며『출판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것이 고작』이라고 밝혔다. 을지서적 김영수기획실장은『중복출판된 책들이 버젓이 판매대까지 따로 마련돼 팔리고 있는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하면서정의를 규제할 수 있는 주체는 서점들 뿐』이라고 서점들의 자발적인 대책을 호소했다. <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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