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애장품을 소중히 여기는 진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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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브루클린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자주 주말을 보냈다. 집이 넓지 않아서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유품들이 부엌 벽장 높은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탁자 위에 올라가야 겨우 손에 닿았다. 여섯 살부터 열 세 살때까지 나는 주말마다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나서 책이란 책, 상자란 상자는 모두 끄집어내 열어 보았다.

벽장은 나에게 무한한 차원, 무한한 깊이를 지닌 보물 창고 같은 것이었다. 열쇠 고리, 엽서, 짝 없는 귀고리, 어머니나 이모가 잔뜩 메모를 적어 놓은 교과서를 보면서 그들이 어떤 분이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데이트 할 때나 댄스파티에서 찍은 어머니의 사진은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두 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 나의 생부는 부재 중인 인물이었다. 아버지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일종의 금기 사항이었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느낌마저 받았다.

이모는 할아버지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내가 유품을 뒤지고 있을 때 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 보곤 하셨다. 나는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분들은 내가 무얼 찾고 있는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나는 만나지 못한 사람,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내 손길이 닿기 전에 주소록, 명함, 메모지 등 아버지가 남겼을 법한 조그마한 물건이라도 모조리 치워버렸다.

한번은 판자길 위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에서 그의 얼굴만 잘려 나갔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에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그 귀중한 사진마저 없어질까봐 사진을 보았다는 말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 사진은 비록 얼굴은 잘려나갔지만 내가 찾고 있는 퍼즐의 조각들을 담고 있었다. 아버지는 끈으로 매는 구두를 신었고, 트위드(스코틀랜드의 모직물)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 모양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후 나는 일종의 소명감처럼 사람들이 들려주는 얘기에 자세히 귀기울이게 되었다. 나에게 연결 고리를 제공한 헌책, 사진, 꽃장식, 장갑으로 가득찬 벽장의 냄새와 느낌에서 잉태된 성향이다. 나는 바로 그곳에서 이 물건들을 단서로 비밀을 풀기로 결심했다.

나는 학업을 계속하면서 사물을 전제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지적 전통에 대해 알게 되었다. 파리에서 나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를 만났다. 그는 브리콜라주(bricolage. 닥치는 모든 물건을 이용해 직접 만드는 예술)라는 개념을 이용해 사물을 ‘사고를 촉발하는 증거품’(goods-to-think-with)로 설명했다. 나는 내가 추억의 벽장에서 주말을 보내는 동안 옛 사진들에 대한 백일몽만 꾸고 있었던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브리콜라주 사상은 프랑스 지성사의 산물이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 결합하고 재결합하려고 했던 사물들은 나에게 퍼즐 조각에 불과했다.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기 위해 그 조각들은 극도로 짙은 감정을 농축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고로 직결되는 사물들과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물들로 생각하고,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촉발시키는 사물들을 사랑한다.

이것은 예술가,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공학자, 과학자에게도 마찬가지다. 2001년 내가 IMT에서 Initiative on Technology and Self를 시작했을 때 Evocative Objects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열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사물을 사고의 도구로서뿐만 아니라 열정적인 삶의 동반자로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제목의 저서는 이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다. MIT에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과학과 기술의 사물이 중심이 되었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물건을 통해 숫자, 공간, 시간, 인과 법칙, 삶에 대해 사고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우리의 학습 과정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각자에게 모두 사고를 촉발시키는 물건이 있다. 당신의 물건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풍부하게 축적돼온 추억, 연상, 직관력의 잠금장치를 해제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사고 과정에 도달하게 한다. 그것은 매일 당신이 갖고 일하는 것, 매일 바라보는 것일 수 있다. 18살 때 아버지가 당신에게 준 펜일 수도 있고, 큰 맘 먹고 구입한 소형 노트북일 수도 있다. 아니면 친구가 잠비아에서 어렵게 구해서 깨지지 않고 가져온 점토 말 인형 선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떤 물건을 떠올린 다음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라. 과거와 현재, 일과 지적인 삶, 당신 주변의 세계,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연결해주는지.

이장직 기자

*많은 사람들이 올린 글들은 http://tinyurl.com/2x96mr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Sherry Turkle“The Secret Power of Things We Hold Dear”을 요약한 것입니다.

***셰리 터클은 미국 MIT ‘과학과 테크놀로지 사회학’교수입니다. 최근 MIT 대학 출판부에서 Evocative Objects: Things We Think With(우리에게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일종의 자서전적 에세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통해 생각하고, 우리에게 사고하도록 하는 물건들을 또 사랑한다는 게 요지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 추억, 관계,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정서적, 지적 동반자라는 것이지요. 다이어리나 랩탑 컴퓨터일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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