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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단지로 확산되는 리모델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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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24면

리모델링한 궁전 아파트 [변선구 기자]

 3930세대에 이르는 대단지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에선 요즘 재개발 방향을 둘러싼 주민들 간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이곳은 2003년 주민 다수의 동의를 얻어 재건축추진위가 결성됐다. 그러나 잇따른 규제 강화로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지난해 리모델링추진위 준비모임이 따로 만들어졌다. 입주자대표회의도 재건축추진위 직원의 급여 부담 등을 이유로 지난해 조합 해산을 결의해 재건축추진위와 법적 갈등을 빚었다. 현재 재건축추진위와 리모델링 준비모임은 주민을 대상으로 치열한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인근 송파공인 최명섭 대표는 “재건축으로는 수익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리모델링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는 못한 상태”라며 “내년 신 정부 출범 이후 재건축 규제가 완화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 기다려보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치동 청실·개나리, 역삼동 성보, 논현동 경복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최근 아파트단지 리모델링 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곳곳에서 찬반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리모델링은 소형 평형 의무비율과 개발부담금 부과 등 재건축 규제가 크게 강화되면서 관심을 갖는 아파트단지가 크게 늘었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으로 사업에 착수했거나 추진 중인 곳은 서울지역만 81개 단지, 4만6475세대에 이른다. 이 중 방배동 삼호아파트와 압구정동 아크로빌, 용강동 용강아파트 등 6개 단지가 완공됐고 이촌동 현대, 도곡동 동신1·2차, 당산동 평화 등 6개 단지는 행위허가를 통과해 언제든지 착공이 가능한 단계다. 방배동 경남, 둔촌동 현대 등은 건축심의를 통과했거나 조합이 설립돼 사업추진이 구체화되고 있다. 나머지 60여 개 단지는 추진위 구성이나 건설사 선정 등 초기 단계다.
 
■대형 단지도 관심=3개 동 110세대 규모인 서울 방배동 궁전아파트. 지난 1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쌍용예가클래식으로 이름을 바꾼 뒤 집값이 크게 뛰었다. 착수 때인 2005년 7월 3억7000만원이던 92㎡(28평형)는 115㎡(35평)로 넓어지면서 9억원이 됐다. 148㎡(45평형옛 36평형)는 같은 기간 4억6000만원에서 11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평당 1100만∼1200만원으로 주변 아파트보다 500만원 가량 낮았던 평당가도 리모델링 완공 뒤 2700만∼3000만원으로 주변보다 500만원가량 높게 형성됐다. 집주인들은 자기부담금(1억원, 1억3000만원)을 빼고 4억∼5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셈이다.

사업추진 쉽지만 ‘재건축’ 미련이 걸림돌

소형 평형이나 소규모 단지 위주이던 시장도 넓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84~188㎡(56∼57평형) 576가구로 구성된 서울 광장동 워커힐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7일 리모델링 조합을 결성해 삼성물산과 GS건설을 공동 시공사로 선정했다. 반포동 미도1차는 지난 5일 1차 입찰에 이어 오는 20일 최종 입찰을 실시해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모두 2700가구인 부천시 상동 건영·동아·선경아파트는 지난달 공동으로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지금까지 리모델링을 한 단지는 적으면 100가구 미만, 많아야 200여 가구 규모였다.
 
건설사와 부동산업계는 규제가 강화돼 수익성이 떨어진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 지역의 경우 지은 지 15년 이상 돼 리모델링이 가능한 아파트는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 사업기간이 평균 3.5년으로 재건축(6∼10년)보다 짧고 허용되는 용적률과 무관하게 전용면적의 30%까지 평수를 넓힐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재건축에 비해 공간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약점은 최근 새로운 공법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해소되고 있다. 현관과 발코니 쪽으로 공간이 늘어나 안쪽에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간 정원을 두거나, 대형 평형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부모와 자녀세대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분리형 구조로 설계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도곡동 동신의 경우 지하 2층까지 주차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쌍용건설 양영규 리모델링 사업부 차장은 “용적률 180%를 적용 받은 85년 이전 단지라면 몰라도 이후에 지어진 단지는 재건축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14층 안팎의 중층 단지를 중심으로 리모델링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걸림돌도 많다=2004년부터 리모델링을 추진해온 잠원동 한신13차는 지난해 7월 행위허가까지 끝냈지만 착공을 못하고 있다. 공사비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애초 80%에 달했던 찬성 주민의 비율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리모델링 공사비는 평당 280만∼320만원으로 재건축(320만∼400만원)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풍납동 미성에선 추가분담금을 둘러싼 주민 갈등으로 리모델링 무효소송이 제기됐다. 여러 평형이 섞여 있는 단지에선 중소형 거주자가 리모델링을 찬성하고, 대형 평형 거주자는 반대하는 모습이 종종 나타난다. 900세대가 79~171㎡(24∼52평형)로 나뉘어 있는 옥수동 극동이 이런 경우다. 응봉동 대림도 일부 주민의 반대로 1개 동을 제외하고 조합이 설립됐다.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이미 충분한 생활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은 굳이 돈 들여 리모델링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면적에 비례해 분담금을 내야 하는 것도 대형 평형 거주자가 리모델링에 소극적인 이유”라고 풀이했다.
 
■투자 땐 옥석 가려야=2004년부터 리모델링이 추진된 서울 둔촌동의 한 단지는 지난해에만 아파트값이 33% 뛰었다. 조합 설립과 시공사 선정 등이 순조롭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들어 비용 분담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사업 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아파트 값은 약세로 돌아섰고, 리모델링을 기대하고 투자했던 사람들은 발을 굴러야 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리모델링 얘기가 나오면 아파트 값이 뛰지만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곳이 많다”며 “손바뀜이 잦았던 곳일수록 시세차익을 얻기 어려워 사업진척이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대형 평형이 끼어 있지 않은 복도식으로 증축이 쉬운 1자형 구조인 단지 중 주민 동의율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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