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자연의 잠에서 깨어나 ‘강국 러시아’ 부활의 땅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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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02면

시베리아.
슬라브 여인의 피부처럼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 행렬, 끝없는 타이가 숲과 광활한 평원. 천지를 뒤덮은 새하얀 눈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영화 ‘닥터 지바고’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어울려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시베리아의 이미지는 여전히 신비로움 그 자체다. 드넓은 땅과 원시 자연의 신비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우리를 끈다. 5월 초순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호화 관광 열차가 등장한다는 소식이 외신으로 날아들었다. 시베리아를 제대로 취재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일인당 1500만원. 호화판을 경험해 보고 싶은 욕심도 일었다. 영국에 있는 운영사에 수차례의 편지를 보낸 끝에 어렵사리 취재 기회를 얻었다.

시베리아의 자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2006년 1월 일반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여행하며 체험했던 한겨울의 정취와는 또 다른 풍경이 거기에 있었다. 온통 눈 속에 덮여 있던 타이가 숲이 신록으로 갈아입고 싱그러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바위처럼 얼어붙어 풀릴 것 같지 않던 청정 호수 바이칼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녹아 잔잔하게 찰랑이고 있었다. 한겨울 기온이 영하 50도 밑으로 떨어지는 시베리아에도 짧긴 하지만 영상 40도까지 치솟는 뜨거운 여름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더 이상 원시 자연과 이색적 문화의 땅만은 아니었다. 타이가 숲에 덮였던 거대한 땅 덩어리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개발을 향해 꿈틀거리는 역동적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타이가 숲을 가로질러 세계에서 가장 긴 송유관이 깔리고, 곳곳에서 에너지 개발이 한창이었다.

시베리아는 우리에게 낯선 땅이 아니었다. 그곳엔 가난과 굶주림, 일제의 압박을 피해 도망갔던 우리 선조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이역 땅에서 피를 흘렸던 독립투사들의 애국혼도 숨 쉬고 있었다. 우리의 미래를 밝혀줄 많은 꿈도 시베리아와 연결돼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를 연결하는 사업과 극동 지역의 석유, 가스, 전력을 한반도로 끌어오는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가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다. 시베리아의 풍부한 삼림, 광물, 수산 자원을 공동 개발하는 사업도 검토되고 있다. 북한 핵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실현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이번 취재 여행은 그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한층 높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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