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프리즘] ‘기술 도둑’ 미리 잡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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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13면

도둑질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보릿고개가 기승을 부리던 1960년대는 부엌에 침입해 밥을 훔쳐 먹는 도둑이 많았다. 가발 수출이 호황이던 70년대는 아침에 일어나 보면 처녀의 머리카락이 잘려 없어지곤 했다. 80년대는 물방울 다이아몬드 같은 고가품을 훔친 도둑이 붙잡혀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90년대 외환위기 이후에는 맨홀 뚜껑과 철제 대문도 절취 대상이 됐다.

최근 기술을 훔쳐 외국에 팔아먹는 새로운 형태의 도둑이 등장했다. 산업스파이다. 얼마 전 현대·기아자동차의 전·현직 직원이 승용차 차체 조립 기술을 훔쳐 중국에 팔아 넘긴 사건과, 포스코 계열 IT업체의 와이브로 기술이 미국에 유출될 뻔한 사건이 적발됐다. 피해 추정액이 각각 22조원과 15조원이라니 엄청나다.

‘기술도둑’들은 과거의 도둑과 달리 대부분 첨단 분야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직장에서의 지위를 이용해 기술을 빼낸 뒤, 금전적 대가를 받고 넘기는 일종의 화이트칼라 범죄자다.

범죄의 원인에 대한 이론적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범죄행위가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 하자, 심리학적 병질 또는 사회적 문제에 의해 야기된다는 입장이다. 책임을 행위자 이외의 것으로 돌리는 것이다. 두 번째 이론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입각한, 이성적인 손익계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비용보다 이득이 많다고 여겨질 때 범죄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산업스파이 범죄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는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첨단 분야에 종사하는 기술도둑들은 전통적 범죄자에 비해 생물학적·심리학적·사회적 요인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업스파이 행위는 개인에게는 수지맞는 비즈니스다. 사전에 제지될 가능성이 낮고, 검거되더라도 실형을 받을 확률도 낮으며, 성공하면 엄청난 금전적 이익이 주어진다.

최근에 발효된 ‘산업기술 유출방지법’은 처벌 대상을 기업뿐 아니라 국가·연구기관·대학 등 산업기술의 개발·보급·활용에 관련되는 모든 종사자의 유출행위로 확대했다. 처벌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했다.

이러한 처벌 규정은 기술도둑을 미리 잡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가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된 뒤 처벌을 아무리 강하게 한들 사람이 죽은 뒤에 약을 쓰는 것과 다름없다.

미리 손을 써야 한다. 회사 바깥으로의 e-메일 사용을 막고 위성추적 장치가 달린 신분증으로 연구원들의 위치를 확인한다든가, 문서를 암호화하는 물리적 보안이 한 가지 방법이다.

경제적인 보상, 과학기술인 스스로의 자정 노력, 애사심 고취 등도 예방책이 될 수 있으나 한계가 있다. 따라서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인적(人的) 보안관리 대책이 요구된다.

미국의 경우 국가기밀 유출 방지, 스파이행위 예방을 위해 방위산업체 등의 연구원을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정기적으로 조사한다. 스파이활동에 연루되어 있는가를 미리 색출하기 위해서다. 기업에서도 내부자 절도, 횡령, 산업스파이가 의심될 때 일정한 조건 아래 거짓말 탐지 조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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