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 꽃미남이 속삭인다, 우리말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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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03면

석호필(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웬트워스 밀러의 한국식 애칭)이 ‘미드 폭풍’을 몰고 왔다면 이젠 기무다쿠(일본 톱스타 기무라 다쿠야의 현지 애칭)의 ‘일드 쓰나미’다. 케이블채널 XTM은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일본 드라마 ‘화려한 일족’을 12일 한국어 더빙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TBS가 개국 55주년을 맞아 올 초 리메이크 방영한 ‘화려한 일족’은 평균 시청률 24.4%를 기록한 상반기 일본 최대 흥행작이다.

일본 드라마 ‘화려한 일족’ 기무라 다쿠야

한국에서도 웬만한 대중문화 팬이라면 알고 있는 기무라 다쿠야의 ‘일드’ 상륙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2005년 MBC 드라마넷 ‘프라이드’를 필두로 ‘잠자는 숲’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 ‘히어로’ ‘엔진’ 등 주요 대표작이 줄줄이 소개됐다. 일본 최고 아이돌 그룹 ‘SMAP’의 멤버로 데뷔, 13년째 한결같은 인기를 구가 중인 그는 일본 역대 시청률 톱5 드라마를 주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화려한 일족’은 특기할 만하다. 일단 일본 현지 방송이 끝난 지 불과 넉 달밖에 안 됐다. 일본 드라마는 2004년 1월 ‘퍼스트 러브’(OCN)를 필두로 이제껏 130여 편 수입됐지만 상당수가 1년 이상 묵은 작품들이었다. 현지에서 충분히 검증받은 것들만 들여왔던 셈이다. 하지만 ‘화려한 일족’은 톱스타 기무다쿠의 최신작인 데다 원작자인 야마자키 도요코가 드라마 ‘하얀 거탑’의 원작자란 점에서 수입 속도가 한층 빨랐다.

게다가 ‘화려한 일족’은 ‘일드’ 개방 3년여 만에 처음으로 한국어로 더빙되는 작품이다. 숱한 ‘미드’가 더빙 방송되는 요즘 무슨 대수인가 하겠지만, 파급력은 더 크다. ‘미드’에 비해 출연자들의 생김새나 문화 패턴이 한국인과 거의 다르지 않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어렸을 때 한국말로 더빙된 일본 만화영화를 얼마나 친근하게 받아들였나 돌이켜 보면 의미는 자명하다.

XTM 관계자는 “우리말 더빙은 성우 개런티와 스튜디오 제작 등 추가 예산이 자막방송보다 서너 배 들어 케이블채널로선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래도 시청자 층을 넓히고 ‘일드’에서도 ‘미드’의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킬러 콘텐트를 확보하기 위해 투자했다”고 밝혔다.

1998년 10월 영화 ‘하나비’가 1호로 상륙한 이래 10년간 4차에 걸쳐 일본 문화 콘텐트는 꾸준히 개방돼 왔다. 심지어 개방이 안 된 분야(오락프로 등)도 인터넷에선 실시간으로 소비되고 있다. 눈 밝은 네티즌은 국내 드라마가 어떤 일본 드라마를 어떻게 표절하고 인용했는가까지 꿰뚫어본다. 이에 일본드라마의 원작 판권을 가져오는 경우(‘하얀 거탑’ ‘연애시대’)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만큼 한국 작가들의 창작물이 설 자리는 좁아드는 것이다. ‘미드’와 ‘일드’의 공습 사이에서 한국 드라마는 ‘샌드위치’가 되진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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