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줌마가 빚어낸 걸작 와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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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29면

프랑스 부르고뉴로 와인 취재 여행을 다녀온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시차로 인한 피로도 가셨고 해서 취재를 하면서 도움을 받은 일본인 양조가 나카타 고지씨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아기 다다시의 와인의 기쁨<18>

사실 이번 부르고뉴 취재는 지난번 보르도와 마찬가지로 예약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가 머무는 닷새 안에 일요일과 공휴일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일하지 않는다. 부르고뉴의 생산자도 모두 휴식을 취하는 탓에 미리 예약해둔 알베르 비쇼사(社) 외에는 취재를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우리를 도와준 사람이 나카타씨다. 나카타씨는 친분 있는 임마누엘 루게, 자크 카셰 같은 생산자에게 말해 취재 예약을 해주었다. 또한 나카타씨 본인도 휴일을 반납하고 한국인 아내 박재화씨와 함께 우리의 취재에 동행해 주었다. 두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알찬 취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다.

나카타씨는 현재 부르고뉴의 제브레 샹베르텡 마을에 살며 아내 재화씨와 함께 네고시앙(포도밭을 소유하지 않고 구입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양조자)으로서 와인을 만든다. 나카타씨의 브랜드 ‘루 뒤몽’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져 ‘신의 물방울’에서도 ‘뫼르소 2003년’을 반 고흐의 유작 그림 ‘꽃이 핀 아몬드 나무’에 비유해 소개했다.

나카타씨와 재화씨는 무척 사이 좋은 잉꼬부부인데 재미있게도 성격은 정반대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고 무슨 일에나 조심스러운 나카타씨에 비해 여섯 살 연상인 재화씨는 사교적이고 행동파라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타입이다. 재화씨가 “고지~” 하고 부르면 나카타씨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는 것도 보기에 흐뭇한 광경이다. 디종에서 알게 됐다는 두 사람의 일상 대화는 프랑스어와 일본어가 뒤섞여 있지만 말 없이도 ‘환상적인 호흡’으로 뜻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절대 오만하지 않은 나카타씨. 하지만 와인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 매우 철저하다. 전에 ‘신의 물방울’에서 소개한 ‘뫼르소’에 대해 ‘2003년은 부르고뉴의 날씨가 무더워 고전한 해인데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카타씨의 답은 이랬다. “너무 더웠던 해는 예년 같으면 일조량이 적고 추운 장소에 있는 포도밭의 포도를 사들입니다. 그러면 적당하게 신맛이 나는 골격이 튼튼한 와인이 됩니다.” ‘과연’ 하고 감탄했다. 네고시앙은 포도밭에 자신의 의도를 반영할 수 없으므로 불리한 점도 많지만, 이렇듯 힘겨운 해에는 뜻밖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나카타씨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이지만 양조가로서는 몹시 엄격하며 안목도 뛰어나다. 주장이 강한 스타일은 결코 아니나 술의 질이 부드럽고 우아해서 어떤 빈티지나 고루 안정되고 수준 높은 맛을 제공해 주는 ‘루 뒤몽’의 와인에는 나카타씨의 그러한 인간성이 잘 표현돼 있는 것 같다. 번역 설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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