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싱가포르 서슬퍼런 법…움츠러든 비리(공직자상·공직자윤리: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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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탄핵소추 등 감찰원 권한 막강 대만/뇌물받을 의도 드러나도 처벌 싱가포르
한국과 같은 문화권이면서도 대만과 싱가포르는 청렴을 공무원사회의 최고 덕목으로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는 간혹 공무원들의 비리가 폭로되는 경우는 있지만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 윤리 시비가 일어나는 예는 거의 없다. 대만의 경우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립에 고시·감찰을 더해 5권분립제를 채택함으로써 직업공무원제가 서구 선진국 수준으로 확립되어 있고,부정공무원은 하부 직위에서 정리되기 때문에 고위직 인사를 둘러싼 자격시비 소지는 아주 적다.
법무부 산하에 일반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수사하는 조사국이 별도로 있고 검찰원은 고급공무원에 대한 탄핵·소추권과 국정감사권을 갖는다. 감찰원은 또 총통이 제청하는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 및 고시위원의 임명동의권을 갖는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대만에서는 또 말단에서부터 인사에 있어서 공정성이 지켜진다. 공석이 생기면 인사담당부처에서 일단 그 자리에 오를 자격을 갖춘 사람 모두의 학력과 근무평점 등 인사관련자료를 인사평의회에 보낸다. 이 인사평의회에서 인사대상자를 3배수로 압축해 해당기관장에게 보내면 기관장이 그중에서 적임자를 결정한다.
공무원들의 인사가 이처럼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떤 자리가 생기면 누가 적임자인지 예상이 가능해 낙하산인사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다.
대만 공무원사회가 이렇게 정착되게 된데는 법의 역할 또한 컸다. 대만은 형법이외에도 공무원 부정단속을 위한 특별법까지 마련,공무원 부정에 대해서는 최저 5년에서 최고 사형으로 엄격히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대만에서는 최근들어 민주화바람을 타고 야당 조직이 커짐에 따라 정치자금 조성을 위한 정경유착의 사례가 보도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의회에서는 공무원의 재산공개와 정치헌금의 양성화가 논의되고 있다.
싱가포르도 지난 59년 리광야오(이광휘) 전총리 취임때부터 실시된 부패추방운동이 공무원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려 적어도 고위직 인사를 둘러싼 자격시비만은 일지 않는다. 이 전총리가 영국지배의 잔재를 조속히 씻어내기 위해서는 마음을 청결히 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판단,부정부패 척결운동을 펼치는 한편 우수한 인재를 공무원으로 끌어 들인 노력의 결실이었다.
부패척결을 위해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때까지 유명무실했던 부패방지법의 정비였다. 공무원들의 부패를 척결하지 않고는 사회전반의 부패상을 정리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싱가포르의 부패방지법은 그후 세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뇌물을 받을 의도를 드러내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해 공무원들의 부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렸다. 부패방지법을 집행하는 수사국도 처음에는 내무부 산하에 두었다가 지금은 행정부 전체부서와 공조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총리실 직속으로 바꾸었다.
대만도 그렇지만 싱가포르의 공무원들도 어느정도의 생활수준을 보장받고 있으며 도덕심에 대한 긍지가 아주 강하다. 싱가포르의 경우 공무원이 가장 훌륭한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실력이 우수한 대학생들도 먼저 공무원진출을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만과 싱가포르의 부정부패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무엇보다 초기 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과거 아픈 역사에 대한 뼈저린 반성으로 부정부패척결에 솔선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장제스(장개석) 전대만총통은 대륙에서 밀려난 직후 패퇴의 근본원인이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했으며,싱가포르의 이 전총리 역시 영국식민통치 하에서 얻었던 마약·매음·성병의 도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마음부터 결백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대대적인 부정 부패척결운동에 앞장섰다.<이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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