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수사검사 디 피에트로/이 국민들 “갈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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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법정신문 TV장면 시청률 1위/T셔츠·맥주잔에 초상화도 등장
『부정부패의 세계에 대항한 정의의 사도』.
이탈리아 전역이 불법정치자금 스캔들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가운데 신문과 TV의 헤드라인은 연일 한 용기있는 검사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밀라노지방검찰 검사(42).
그는 공공공사의 이권을 놓고 뒷거래를 해오며 뱃속을 불려온 정치인과 기업인들에 대한 일명 「손세탁」작전을 진두지휘,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파헤쳐 일약 이탈리아 국민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점에서 그의 자서전이 날개돋친듯 팔려나가는가 하면 T셔츠와 맥주잔에도 초상화가 등장하고 있다. 그의 법정신문 장면이 방송되는 뉴스시간대에는 전국 시청자들이 미국 영화스타 톰 크루즈나 이탈리아출신 여우 소피아 로렌이 열연하는 드라마를 제쳐둔채 TV앞에 달라붙어 열광한다.
디 피에트로 검사가 지난해 2월 밀라노에서 처음 이번 스캔들의 발판이 된 사건을 터뜨렸을때 언론들은 매우 놀랐다. 부정부패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정경유착의 비리를 물위로 끌어낸 그의 용기 때문이었다.
밀라노에서 한 사회당 간부가 시립병원 신축공사를 미끼로 기업으로부터 7백만리라(약 3백5만원)의 뇌물을 챙긴 「관행」에 가까운 경미한 수뢰사건이었다. 하지만 집요한 그의 수사는 이렇게 모아진 돈이 당수인 베티노 크락시 사회당 당수에까지 흘러들어갔음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이번 스캔들로 법무장관 등 현직 장관 3명이 사임했고 모두 50명의 현역 의원을 포함,9백여명의 정치인·기업인이 체포됐으며 아직도 1천여명이 수사대상에 올라있다.
이탈리아에서 이같은 정경비리는 70년대초 기민당 등 정당들이 이탈리아 공산당이 구소련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은밀히 지원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이권사업에 개입,편법으로 정치자금을 동원하면서 본격화됐다.
정당과 공기업체 간부들이 짜고 모든 공공사업의 하청업자 선정에서 입찰을 조작,정당이 일정액의 「수고비」를 상납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지금 이탈리아는 정부가 흔들리고 리라화·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등 나라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2차대전이후 최대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국민대다수는 오히려 흐뭇한 표정들이다.
8백명수용 규모인 밀라노의 산 비토레 교도소는 요즘 수사망에 걸려든 용의자들이 몰려들어 2천1백여명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교도소 면회실에선 모든 상류계층을 만날 수 있어 「스칼라좌 로비」라는 농담이 유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번 사건이 초래한 정치·경제적 혼란을 우려,당사자가 혐의사실을 인정하면 사면토록 하는 조치를 입법화하려 하고 있으나 디 피에트로검사의 칼날은 쉽사리 무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디 피에트로검사는 『종양이 절반밖에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술을 멈추면 병은 다시 재발할 수 밖에 없다』며,이번 사건을 통해 이탈리아의 정치부조리를 뿌리뽑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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