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기부 야당 정치인과 접촉/협조 따라 「보상비」지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안가서 만나… 원격조정/87년 「개헌정국」때 상당수 “관리”/용팔이사건 장세동씨 수사서 밝혀
안기부가 야당 정치인들과 수시로 접촉,정보제공과 협조대가로 돈을 건네주는 등 사실상 조직적으로 「야당 길들이기」를 해온 사실이 장세동 전안기부장(57)에 대한 검찰조사에서 드러났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일명 용팔이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8일 출두한 장씨를 철야조사한 결과 장씨가 이택희·이택돈 전의원에게 건네준 돈이 당초 시인했던 1억원 이외에 4억원 정도가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 돈의 전달경위와 목적을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빠르면 9일중 혐의사실을 확정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했다.
◇야당공작=장씨는 8일 검찰 진술에서 『주로 궁정동·삼청동 안가에서 야당정치인·종교인·교수 등을 만나 시국에 관한 의견을 들은뒤 정보의 비중과 협조정도에 따라 보상비를 차등 지급했다』고 말했다.
장씨의 진술에 따라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이 일어났던 87년 4월을 전후해 호헌·내각제 개헌 등과 관련,긴박하게 전개됐던 야당 분열과정에서 이택희·이택돈 전의원 이외의 다른 야당의원들에게도 안기부의 공작금이 은밀하게 건네진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당시 야당분열 과정에서 김영삼·김대중씨의 반대편에 섰던 야당의원들에게 안기부측이 접근,강성야당의 출현을 저지하려한 흔적이 장씨의 진술과 함께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당시 신민당에 잔류했던 J의원은 8일 본사기자와 만나 『신민당 잔류의원의 상당수가 안기부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안다』며 『이들은 직선제 개헌투쟁을 벌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엉뚱한 발언을 하거나 슬쩍 빠져버리곤 했다』고 말했다.
또 역시 잔류파였던 C의원도 『안기부의 공작대상으로 분류된 의원들은 공통점이 있으며 이들은 한결같이 개인적인 비리가 있거나 사업 등으로 이권과 연결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안기부의 공작정치가 집중됐다는 것이 확실한만큼 검찰이 이번 장씨 수사에서도 이 부분을 밝혀내야만 용팔이사건의 진상도 명확히 규명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사도 차제에 제대로 조명되어야 한다는 여론이다.
◇장씨 수사=장씨는 검찰조사에서 『창당방해를 목적으로 돈을 건네준 사실은 없다』고 자신의 범죄 지시 사실을 부인했다.
이택돈 전의원은 이와 관련,검찰에서 『장 전부장을 수시로 만나 구체적인 창당방해 공작을 논의했으며 실행자금 명목으로 여러차례에 걸쳐 모두 5억원을 건네받았다』고 진술했었다. 검찰은 장씨와 두 이 전의원의 진술이 돈의 용도부분에서 엇갈림에 따라 이날중 구속중인 이택돈씨와의 대질신문을 벌이기로 하는 한편 최근 수사 결과에서 드러난 안기부 자금추적 자료를 토대로 자금의 용도와 규모 등을 추궁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