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못채운 첫 임기제총장/김종혁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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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두희검찰총장이 8일 법무부장관으로 전격 영전했다. 지난해 12월6일 총장으로 취임한지 불과 석달 이틀만의 일이다.
정부내의 어느 행정기관이든 상사가 영전해 떠나면 부하들은 희색이 만연하게 마련이다.
모시던 분야 높은 자리에 가는 걸 싫어할 이유가 없고,인사에 목을 맨 공무원사회에서 적체된 승진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이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김 총장이 법무부장관으로 영전한데 대한 검찰내부의 평가와 반응은 환영일색만은 아니다. 김 총장이 부하들과 인간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아랫사람들로부터 광범한 신임과 존경을 받아왔고,내부에서 법무부장관을 기용할 경우 김 총장 발탁이 순리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김 총장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소신을 보장하기 위해 88년말부터 도입된 검찰총장 임기제에 따라 3대 임기제 총장에 취임한뒤 백일을 넘기지 못한채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떠나게 돼 「임기를 못채운 첫 임기제총장」이란 선례를 만들었다는데 있다.
검찰총장 임기제이후 검찰이 과연 정치적 외풍에 꿋꿋이 소신을 지켜왔느냐에 대해선 이견이 많다. 또 박희태 전임장관이 갑자기 사임해버린 가운데 적당한 인물을 물색할 여유가 없었다는 상황논리도 일면 타당하고 경질이 아니라 영전이니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총장임기제가 명목적인 것에 불과했다면 오히려 문민시대의 새로운 검찰상을 정립한다는 측면에서라도 총장임기는 보장됐어야 옳다는 의견이 많다.
정치권의 상황이 절박했다는 대목도 거꾸로 뒤집어보면 앞으로 정권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검찰총장을 왔다갔다 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풀이다.
법무부장관이 공권력의 야전사령관격인 검찰총장 출신이면 정부로서는 행정의 효율성을 다져나가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자리인 장관직에 과거와 마찬가지로 검찰출신만을 각별히 선호,인물난 운운하는 자체도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직 검찰총장이 곧바로 법무부장관으로 입각하는데 따른 문제점도 이미 여러차례 거론됐었다.
김 총장 본인도 장관으로 임명된 8일 기자들과 만나 『총장임기제에 대해 말씀드렸고…. 문제점을 다 알지만 임명했다는 설명을 듣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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