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출판계 전속계약"붐"|한국작가를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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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문열등 10여명 작품 불·이서 출간 잇따라·한국문학이 유럽대륙에 본격 상륙하고 있다. 최근 이문열·최인호·금성동·오정희씨 등의 작품집이 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 잇따라 번역·출간됐는가하면 몇몇 출판사들은 우리의 주요 작가들과 경쟁적으로 전속계약을 맺는 등 유럽 독서 계에 한국 문학붐이 일고 있다. 또 동구권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폴란드의 주요문예지인계간『세계문학』최근호가 전권을 한국문학특집으로 꾸미는 등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었다. 이제 분단으로 양 체제의 긴장을 살아낸 한국문학이 각기 사회주의 리얼리즘 또는 자본주의 문예사조에 경도 됐던 동·서구 문학에 신선한 자극을 주며 유럽 독서 계를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유럽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한국문학에 눈을 돌린 출판사는 프랑스의 악트쉬드.90년 이문열씨의『금시조』를 처음으로 번역, 출간하면서 한국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한 악트쉬드는 지금까지 이청준·조세희·이균영·금승옥·최인호씨의 작품집을 펴냈다. 프랑스 본격 소설도 초판 3천권이 채 못 팔리는 상황에서 한국작가의 작품은 4천∼5천 권씩 나가고 또르몽드·르피가로 등 유력지 들이 앞다퉈 호평한데 고무된 악트쉬드는 지난해 6월 편집장 베르트탕 피를 한국에 보내 이문열·이청준·조세희·최인호·서정인·윤후명씨 등과 유럽 판권 전속계약까지 맺었다.
악트쉬드의 「한국 문학시리즈」에 매력을 느낀 같은 프랑스의 필립 피키에 출판사도 91년도 오정희씨의 중편집 『바람의 넋』,을 시작으로 오씨의 단편집『순례자의 노래』, 금성동씨의 장편『만다라』를 최근 출간했다. 이 출판사는 또 윤흥길·김원일·이청준·최인훈씨의 작품 번역계획을 세워두고 있으나 악트쉬드가 이미 전속계약을 훑고 간 뒤라 계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판사내에 특별 부서로 한국문학부까지 두고 있는 필립피키에는 한국중견작가 작품집과는 별도로 한국 현대문학의 다양한 경향을 알릴 수 있는 30대작가 13명의 중편을 모은『한국현 대 작가중편 선』 5 ∼ 10권 과함께 『한국문화백과사전』출간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의 기운티 출판사는 악트쉬드에 유럽판권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92년 이문열씨의『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번역, 출간한데 이어 계속 이씨의 작품을 펴낼 예정이다. 서울대국문과 대학원에 유학했던 나폴리 동양학 대학 리오토교수를 전속 번역가로 둔 기운티 출판사는 앞으로 한국작가들과 독자적으로 계약, 작품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와 같이 유럽출판사들이 한국작가 잡기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것은 우선 우리 현대문학의 작품성을 꼽을 수 있다.92년10월2일자 르몽드지가 이문열씨 작품을『왜곡된 역사와 사회 속에서의 삶에 대한 작가로서의 깊이 있는 질문』이라고 평했듯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개인적 삶으로 향하거나 혹은 고급 지적 유희로 흐르는 그들의 작품과는 달리 우리 문학에는 사회와 개인적 삶 사이의 갈등·고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분단의 굴레가 오히려 안겨준「한국 현대문학의 영광」은 사회와 삶 사이의 대서사구조가 무너지고 파편화 돼가는 서구문학이나 위대한 사회만 이념적으로 칭송해 왔던 동구문학에 식상한 그곳 고급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이제 그 동안 너무 일방적으로 강요돼왔던 서구문학역조현상을 바로잡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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