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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은 철저한 세습제/45년된 광주 누항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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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마을장례 공동치르기서 출발/기금모아 장학금사업도 벌여
마을 청년들이 모여 웃어른을 공경하고 마을 초상을 함께 치르자고 만든 계모임이 45년째 계속되며 상부상조의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48년 4월 당시 광주읍 누항리(지금의 북동·누문동·유동) 일대 마을 청년 50여명이 모여 결성한 광주누항계가 화제의 대상으로 계명칭은 마을 이름을 따 지은 것이다.
초기에는 마을 초상을 함께 치르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던 탓에 누군가가 상을 당하면 직접 염을 하고 때로는 80리가 넘는 길을 상여를 메고 가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해왔다.
이밖에 명절때는 회원들이 함께 동네 어른들을 찾아 다니며 인사하고,궂은 일 좋은 일 가리지 않고 온갖 마을 일을 도맡아 한 결과 주민들의 화합은 물론 경로효친사상을 높이는데도 큰 몫을 하며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청년단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83년 아웅산 사건으로 숨진 당시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이었던 심상우씨도 계원중 한 사람이었다.
『계가 이토록 오래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엄한 계칙 때문이었습니다.』
21년째 총무를 맡고 있는 김남기씨(59)의 말.
『매월 1일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월례회에 지각하는 계원이 거의 없고 계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사정없이 제명해 왔었지요.』
회의의 순서는 월례회나 정기회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난 선배들에게 묵도를 하고 「무진골」(광주의 옛 이름)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가자」는 내용의 누항계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회원자격을 세습제 형식으로 택하고 있는 것도 특징중의 하나.
회원이 사망할 경우 그의 아들이 자격을 이어받고 아들이 없을 때는 사위가 승계하도록 돼 있다.
안태영씨(45)는 장인이 사망한 뒤 처남이 없어 사위자격으로 회원이 된 사례.
45년 역사를 통해 이제는 기금도 많이 모여 모교 등을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을 벌이고 재해가 났을 때는 앞장 서 모금운동을 펴기도 한다.
박선홍회장은 『그러나 계원들에게 경제적으로 무리한 부담은 절대로 지우는 일이 없다』며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모금할 때는 형편이 가장 어려운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고 원칙을 밝혔다.
그러나 이 계의 역사는 실제 이 보다 훨씬 오래전인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모임의 발기인으로 현재 고문을 맡고 있는 심양섭씨(74)는 『이 계는 당초 구한말에 만들어졌다가 일제때 젊은이들이 징용당하는 바람에 한때 중단됐던 것을 해방후 재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광주=천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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