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 고려인연합회 김영웅회장(일요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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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문화」 지키게 본국서 지원을”/다민족정책 변질돼 심각한 위기/연해주 자치주 건설은 반대입장
­최근 타지크내전으로 인한 한인들의 피해상황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여기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데 한인들의 생활상과 조국 한국에 바라는 점은.
『먼저 타지크 사태 등에 대해 조국에서 여러가지로 관심을 기울여준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같은 핏줄인 한인들이 어려울 때 서로 돕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마 앞으로의 후손들에게도 큰 감명을 줄 것이며 특히 구소련지역 한인들에겐 한국을 다시한번 가깝게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소련지역의 한인들은 약 45만명 정도 됩니다. 비록 문화권이 다른 지역에 나누어져 살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공통적인 문화적 특징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치·두부·콩나물·보신탕 등 음식에서부터 설 등의 명절에 이르기까지,또 어려울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에 이르기까지 문화적으로 아직 한인문화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인들이 현재 소련의 붕괴이후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문화적 공감대가 붕괴될 상황에 이른 것이 현재 한인들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한인들은 상황은 어렵지만 생활은 별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의 한인들이 조국에 기대하는 것은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공동체를 보존,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교육·문화적 지원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한인들의 문화공동체가 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심각한 전환기에 도달했다고 보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위기인지,또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대책은 있을 수 있는 것인지.
『한인들이 그동안 여러군데 흩어져 살면서도 문화적인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구소련의 민족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소련은 1백개 이상의 다민족 국가였던 관계로 일단 전국 공통어로 러시아어를 제정했고 러시아어를 할줄 알면 구소련의 어떤 지역에서 살든 문화적으로 피해나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없게 제도를 운용해 왔습니다. 또한 나라의 건국이념중 하나가 무종교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종교의 차이나 종교때문에 발생하는 종교문화적인 피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소수민족이라 하더라도 러시아어를 할줄 알고 소련의 국가이념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손해보지 않았습니다.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를 비롯,구소련의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도 민족적 문화전통을 유지해온 이유는 바로 이러한 소련의 정책으로 인해 이슬람문화권에 살든 불교문화권에 살든,아니면 러시아 정교문화권 지역에서 살든 피해를 보지 않았던 이유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구소련 붕괴후 각지의 독립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고유어를 국어로 정하고 전통종교·문화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거주지역에 따라 한인들의 문화가 변질될 가능성이 높고 문화적 공동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습니다.』
­구 소련붕괴후 한인들도 거주지역에 따라 입장이 많이 달라지는데 일부에서는 연해주에 한인자치주를 건설하자고 주장하고 있고,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한인에 대한 피의 탄압을 불러올 시대착오적 망상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고려인연합회의 입장은.
『1년여전까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달전 각지의 고려인협회 대표들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했을때 여기에 대해 대다수가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저 자신도 이문제는 거론하기 어려운 문제고 중앙아시아에서 이미 사회·경제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그 지역의 국민으로 존재하고 있는 한인들을 집단적으로 국가가 다른 러시아땅 연해주로 이주시키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연해주지역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거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러시아 최고소비예트에 상정된 스탈린시대 한인강제이주문제에 대한 권리회복법안 처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또 고려인연합회에서 현재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한인 권리회복에 관한 법안은 이제 모든 절차를 다 끝내고 최고소비예트에 의한 승인발표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법안이 승인 발표되면 과거 일제의 간첩노릇을 의심받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던 한인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일부 재산상의 보상도 받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구소련권 지역 한인 사회의 미래상을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러시아의 다른 민족에 비해 한인들은 교육수준이 높은 민족입니다. 25세에서 60세 사이의 인구중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비율이 평균 55% 정도 됩니다. 이러한 비율은 유대인을 제외한 다른 민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높은 것입니다.
한인들의 미래가 비록 구 소련지역 전체의 혼란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어렵겠지만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사회내 곳곳에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는 한인들의 활동상은 아무리 과소평가하려야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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