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던그라운드「공동음반」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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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 대중음악에서「언더그라운드」라는 수식어는 어느 사이 본래의 의미가 퇴색해버렸다.
「언더그라운드」는 이제 기존의 유행음악과 변별성이 없어졌고 기성의 문화에 저항적인 거리감도 없다. 「언더 그라운드」라는 다소 부정적이고 음모적인 관형어가 따라야만 음악성향이 파악되는 음악인들도 별로 없다.
시각적인 면보다는 음악 자체만으로 승부하려는 가수들이 많아짐에 따라 TV출연의 여부로 판단되었던 언더 그라운드라는 용어는 이제 폐기처분 직전에 와있다. 음반판매는 음반이나 실황공연이외에는 점하기 어려운 소위 언더 그라운드가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 최근 수년간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단순한 심심풀이 이기를 거부하는「하나옴니버스」(음악감독 조동진)의 음악은 언더 그라운드가 땅 위에 꽃피워지는 것을 자임하고 있다.
조동진·김민기라는 우리 대중음악에서 다소 신화적인 이미지를 부여받은 음악인들과 그 계열을 잇는 음악인들이다.
그룹「들국화」출신의 최성원·손진태,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동물원」의 김창기,성숙한 작·편곡 솜씨를 자랑하는 김현철, 요절한 천재 작곡가 유재하를 잇는 유재하음악장학회 출신의 조규찬·고찬용·안성수·정혜선·박긴영 등.
스타를 만들어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게끔 하는 대중음악 산업에서 매니저와 제작자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자유로워지려면 이들처럼 작곡·편곡·연주를 할 줄 아는 음악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명하다.
그에 더해 조동진의 동생 조동익이 이끄는 김광민(키보드) 김영석(드럼) 박용준(키보드) 등 연주·편곡의 그룹이 교육과 계승이 전무한 우리 대중음악의 질을 결정적으로 높여주고 있다.
대중들에게 단순히 들리는 음악이 아니라 대중들이「찾아서 듣는」음악이 되기를 이들은 지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익히 아는 음악인들 이외에도 미국 보스턴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를 전공하고 서울예전 교수로 활동하고있는 정원영도『거리에 서서』라는 곡으로「하나 옴니버스」를 통해 연주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외국의 전위적인 대중음악을 추구하는 음악인들이 곧잘 발표하는 음반형식인「샘플러」(하나의 독립음반제작자가 가장 전범이 되는 작품들을 모아 선보이는 것)를 만들어보겠다는 취지다.
발라드 음악으로 분류 될 수 있는 포크송을 선보이는 한동준은 상업적인 이득만을 노린 반복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작사·작곡의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이미 2장의 옴니버스 음반을 냈고 16일부터는 학전 소극장에서 2주일간 합동공연을 연다.
이 공연의 주축이 되는 5명의 보컬그룹「낯선 사람들」은 리듬과 화음을 모두 소화해 내는 고찬용의 기타반주 하나만으로 원숙한 기예와 일체감을 보이고 있다. <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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