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권력은 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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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1970년 입학 학번인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 후보의 학창 시절. 1학년 때 열린 개교 10주년 기념 가장행렬에서 박 후보가 소속된 전자공학과 학생들이 아프리카 토인의 모습으로 신촌 거리를 행진했고 그(맨 오른쪽)는 과 깃발을 들고 맨 앞에 섰다.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는 대학 시절 미팅을 한번도 못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1970년 입학 학번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밤거리를 돌아다닌 적도 없다.

그런 그가 단 하루 경호팀을 따돌리고 명동으로 나갔다. 등교하는 척하다 대학 뒷문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는 곧장 명동으로 달려가 중앙극장에서 '천일의 앤'이란 영화를 봤다. 또 모차르트의 곡이 흘러나오는 찻집에서 책 읽는 남자 대학생과 잠시 눈이 마주쳐 미소를 주고받았다. 청와대에 귀가한 그날 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한테 당연히 꾸중을 들을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의 '일탈'에 아무 말도 안 했다고 기록했다.

박 후보가 12일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위즈덤하우스)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지나온 50여 년의 삶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테러를 당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삶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80~90년대의 삶이 일부 공개되기도 했다.

79년 10.26 사태 이후 18년간 박 후보는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세간에서는 그의 은둔기라고도 한다.

"권력은 칼이다. 권력이 클수록 그 칼은 더욱 예리하다. 그 칼을 마구 휘둘러서 쌓이는 원망, 분노, 복수심은 되돌아와 그의 목을 조른다."

90년 9월 2일의 글이다. 퍼스트 레이디로서 권력의 한복판에 있던 그가 평범한 시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권력의 모습이었다.

박 후보는 또 "아버지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가는 현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온갖 비화가 봇물 터지듯 신문과 잡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나에겐 일언반구 말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김대중씨 납치 사건' '정인숙 사건'의 내용이 드러나는 것과 함께 박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추모사업회를 꾸린다.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도와줄 사람이 절실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 만나는 것조차 꺼렸다"고 기억했다.

90년 육영재단 이사장을 그만둔 뒤 박 후보는 "비로소 나의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일기와 독서로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고, 틈틈이 시를 썼다. 단전호흡을 시작한 것도 그때고 성경과 법구경.금강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당시 가장 행복했던 일은 문화유산 답사라고 했다.

단종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선 숙부 세조에게 목숨을 앗긴 어린 왕의 일화를 곱씹으며 동병상련의 느낌을 받은 것 같다. 박 후보는 "내가 그의 벗이 되고 그가 나의 벗이 된 듯했다"고 적고 있다. 박 후보는 그때 시골길에서 만난 한 할머니 얘기를 소개했다. 청바지 차림으로 시골길을 걷다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국수 한 그릇을 얻어먹고 나서는데 한 할머니가 따라와 "난 자네가 누군지 알아, 육영수 여사를 똑 닮았네" 하더란다. 그러더니 한사코 마다하는 박 후보에게 천원짜리 몇 장을 쥐여 주며 "힘내 아직 살날이 많아"란 말을 남기고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너무 고마워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그는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박 후보는 김 위원장을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당시 북한에 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오히려 북한이 놀라 '확인서'를 써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를 흔쾌히 써주었다는 숨겨진 일화도 소개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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