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앞둔 윤증현 금감위원장 또 소신 발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윤증현(사진) 금융감독위원장이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쏟아내고 있다. “재벌에게도 은행을 소유할 길을 터줘야 한다”거나 “우리은행이나 대우증권은 조기 매각해야 한다” 등등. 정부는 물론 노무현 정권의 경제철학과는 다른 얘기들이다. 앞서 노 대통령이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지시하며 “정치 논리로 풀라”고 주문했을 때도 그는 “경제 논리로 풀겠다”고 했다. 금융계에선 이런 그의 소신발언을 놓고 “역시 윤증현’이란 말이 나온다.

 윤 위원장의 소신 발언은 12일 한경 밀레니엄 포럼 조찬 강연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금융회사가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애로는 독점 규제”라며 “과거 폐쇄 경제시대의 법과 제도를 고수하는 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금융회사 육성은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독점 규제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구체적 사례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지적은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기업결합을 제약하는 공정거래법을 겨냥하고 있다. 현행 기업결합 제도로는 금융회사끼리 합병하려 해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을 걸면 방법이 없다. 지난해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추진 때도 기업결합심사가 걸림돌이 됐었다.

 재벌의 은행 소유를 금지한 ‘금산 분리’에 대해서도 그는 강도 높게 비판했다. 5일에도 그는 “산업자본이라고 대못질해 쓰지 못하게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며 “기업에 쌓여있는 여유 자본을 금융산업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소유는 허용하더라도 특정 재벌이 은행을 경영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분리를 풀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까지 제시한 것이다. 이 역시 현 정권의 ‘경제 코드’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윤 위원장은 이날 국책은행 개편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정부는 기능을 최소화하고 파수꾼 역할에 그쳐야 한다”며 “금융회사 운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지양하고 금융은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중장기 과제로 남겨둔 우리금융지주와 대우증권을 빨리 팔아 민영화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그는 다음달 3일로 3년 임기를 마친다. 아무리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지만,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각종 정책에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이 정면으로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다. 윤 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추지 않는 발언을 자주 해 ‘할 말은 하는 뚝심있는 관료’로 평가받고 있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