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산천 노래 향토시 일군다|원로시인 2명 시집출간|군산 이병훈·청주 한병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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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향토시의 텃밭을 일궈온 두 시인이 시집을 펴냈다. 전북 군산문학의 산 증인 이병훈씨(68) 는『고속도로변 까치둥우리에서는』(시세계 간)을, 충북 청주문학의 불을 지핀 한병호씨(55) 는『무심천 둑길을 걸으며』(혜진서관 간)를 최근 각각 펴냈다.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을 떠나본 적이 없는 이씨는 59년『자유문학』추천으로 정식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러나 이씨는 중앙문단 데뷔 훨씬 이전인 47년 군산문단의 주추라 할 군산문학협회를 결성, 어느 지역 못지 않게 풍성하며 올곧은 지방문학을 일궈냈다. 금강이 가져다주는 넓은들의 수확, 일제에 의한 수탈이라는 군산의 자연환경 및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 이씨의 시 세계는 역사의식에 투철한「들의 문학」으로 특징 지어진다. 이씨의 아홉 번째 시집인 『고속도로변 까치둥우리에서는』에도 이같은 이씨의 시적 특징은 그대로 이어진다.
『농사꾼 농투산이/젖가슴 무르익은 겉보리/쌀보리 모두 거둬들여/보리가 된 농투산이/삼베잠뱅이로/그 중요한것만 가리고/시원스레 알몸으로/등천한 채/해의 부족들의 세상이야/더할나위 없지/어리석은 자야 가까이 오지 말라/그 약해빠진 몸/데어 숯이 되어질라』(「한여름에」전문) 평생 들에서 산「해의 부족」만이 일궈낼 수 있는 해와 들의 정서다. 그러나 참여 내지 역사의식으로 하여 이씨의 시는 회고적·음풍농월적 전원의 정서가 아니라 탯잎같이 날 푸른 오늘의 농민정서, 나아가 농촌문제로 나아가고 있다.
한씨의 여섯번째 시집인 『무심천 둑길을 걸으며』는 청주를 노래한 연작시 84편만으로 꾸며졌다. 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한씨는「내륙문학」「백지」「뒷목문학」등 청주지방 문학동인 운동을 펴 지방문단을 일궜고, 충북문인협회장을 역임하며 충북문단을 이끌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 태어나 무심천 둑길을 걸으며 계속 청주를 사랑하고 노래하고자 한다는 이씨의 시들은 대부분 청주송가로 읽힌다.
『무심천을 바라본다/흐르는 물빛도/떠다니는 유람선도 없다/하루종일 바라봐도 아무것도 없다/사람들이/구름처럼 모여왔다 구름처럼 흘러가는/바람의 빈여울목/10년을 바라보아도/100년을 바라보아도/보이는게 없다/보이는건 빈하늘뿐이다/어떤 이는/미라보다리 밑에 흐르는 세느강을 생각한다지만/무심천은/이대로가 좋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대로가 좋다』(「청주·66」전문)
한점 티끌없이 맑은 서정으로 청주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며 청주의 자연·인물 속에 묻혀 사는 자신의 삶과 철학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한씨의 시 세계다. 그러나 한씨의 무심천같은 순진무구한 시 세계에도 자연의 거역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서문동/깡시장에서 /김장용 배추 한포기가/단돈 50원씩에 팔려가는 날/남주동 꽃가게에서는/장미꽃 한송이가 500원씩에 팔려/어디론가 가고 있었다./물값이/핏값보다 더 비싼 세상/나는/어지러워 두 눈을 감았다』(「청주·36」전문)
「두 눈을 감았다」는 시인의 지극히 수동적인 태도가 오히려 읽는 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향토에 거주하며 향토시를 일구고 있는 이들의 시에서는 지역의 살만한 아름다움과 함께 오늘의 아픔이나 의지도 구체적으로 묻어난다.<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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