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해결 물리력 동원 안된다”/이호재 고대교수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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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경협 계속하며 태도변화 유도가 바람직
핵폭개발에 대한 국제적 의혹이 심화되어 북한이 유엔안보이사회의 군사적 제재결의 대상이 되고,더 나아가 북한 핵시설에 대해 물리력에 의한 응징사태가 일어날까 극히 염려된다.
만약 한반도에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면 그것은 최악의 사태로 최근 수년내에 총리회담을 통해 이룩된 「남북간의 기본합의서」「한반도 비핵화선언」등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15년전 판문점에서 일어난 「미루나무사건」을 상기해 보자.
그때도 잔혹한 만행을 저지른 김일성 공산집단에 대해 응징·보복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에서 무력공격론이 강력히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그 응징은 미루나무 한그루 베는 것으로 그쳤다. 김일성 집단을 응징할 수 있는 군사적 수단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강경조치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 더 나쁜 사태를 냉정하게 계산해서 지혜롭게 참아 위기를 넘겼던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 문제는 김일성 집단이 북한인민을 인질로 잡고 「핵무장 가능성」을 위협수단으로 동원,점점 위협적 존재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에 대항해 정권을 존속시키려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면이 적지않게 보인다. 이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점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이는 현재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있는 북한의 핵무장 문제에 대한 해결책 모색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한국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IAEA에 의한 국제적 사찰뿐만 아니라 남북한간 핵사찰의 실천으로 북한의 핵무장 가능성이 완벽하게 봉쇄되지 않는한 한국 기업가의 북한진출을 비롯,남북간의 모든 경제협력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 문제에 대한 강경주장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막연한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유엔안보리의 군사적 압력과 한국의 외교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북한은 결국 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둘째,북한의 핵무장을 문제삼아 남북한간의 경협뿐 아니라 일본·미국 등 국가들의 대북한 진출과 지원이 계속 지연되면 결국 몇년 못가서 고립 무원상태에 빠질 북한정권이 갑작스럽게 붕괴하고 말 것이다. 북한의 목을 계속 조이면 흡수통일의 길이 곧 열릴 것이다.
이런 판단은 매우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북한의 현실과 정권의 성격을 고려할때 전혀 현실성이 없고 성급한 것이기 때문에 강경론자들의 주장은 곧 심각한 함정에 빠질 것으로 판단된다.
상식적으로 볼때 이제 군사력만이 그들의 권력체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군사시설이 포함될 수 밖에 없는 「남북한의 상호핵사찰」을 북한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주권원칙」혹은 「자위권」등을 명분삼아 끝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라크의 경우 그들이 범한 침략에 대한 응징조치가 역으로 오히려 이라크 국민을 후세인 편에 서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경우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 같다.
그래서 너무 이상주의적 입장에서 핵무장 문제에 접근하지 말고 우리측 주장을 좀 양보해 북한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화적 방법이 좀 더 필요하다.
남북한간의 완전한 상호핵사찰을 합의 볼수만 있으면 더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거부태도가 확실하기 때문에 다른 길이 없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처럼 북한도 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현단계에서는 그 정도에 만족하고 경협 등 다른문제를 먼저 해결하면서 남북한 관계의 상황변화를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핵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고 보다 과감한 경제협력으로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는 길이 위기에 있는 남북한 관계의 해결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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