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핵폐기물 동해 폐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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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러시아 해군이 핵잠수함의 낡은 원자로를 포함한 핵폐기물을 비밀리에 동해에 버렸다는 보도는 우리에게 충격과 우려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보도가 영국의 한 TV뉴스에서 나온 것이긴 하나 옐친러시아대통령의 환경보좌관의 말을 인용한 것이고 그가 옐친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밝히고 있어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핵폐기물처리문제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실에서 중앙통제력이 해이해진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공화국들의 핵폐기물 처리문제는 국제적인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지난 86년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에 의해 러시아의 핵발전기술이 뒤떨어지고 관리능력이 미숙하다는 사실은 입증된 바 있다. 또한 미·러 군축회담결과로 폐기되는 러시아핵무기의 방사능물질 제어에 관한 국제적 의혹도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폐기된 러시아 핵잠수함에서 나온 원자로 15기가 1만7천개나 되는 방사성폐기물 컨테이너와 함께 북극해저에 버려져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는 스칸디나비아제국 국민들을 공포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은 국제해양협약에 명백히 위배된다. 핵폐기물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은 최소한 30∼50년이 지나야 감소현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가장 무서운 공해물질로 알려져 있다. 방사능의 저감속도도 매우 느려 1백년이 지나야 겨우 4분의 1로 줄고,1만년이 지나도 겨우 14분의 1로 감소한다는 추산이 나올 정도로 그 해독에 거의 영구적일 만큼의 긴 세월이 걸린다. 그래서 핵발전 선진국들은 핵폐기물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고체화시켜 땅속이나 동굴속 깊숙히 매립함으로써 생태계로부터 완전 격리시키는 처리방법을 쓰고 있다.
이처럼 위험하고 극도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핵폐기물을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동해에 버렸다면 이는 환경파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어로작업은 물론 해상수송에도 중대한 영향이 우려된다.
우선 정부는 이 보도에 대한 사실확인을 러시아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동해의 방사능오염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1차적으로 피해를 보게 되므로 두나라가 사실확인과 오염조사에 공조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또한 해양오염문제는 비단 인접국가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인 환경보전차원에서 거론되는 현실인만큼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러시아의 반인류적인 환경파괴행위에 대한 응징과 제재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러시아로서도 고도의 기술과 재원이 필요한 핵폐기물처리문제를 자체적으로 안전하게 처리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먼저 사실을 솔직히 공개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해 최우선으로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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