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강도 살피기 정·관계 촉각/「김 대통령 개혁강조」싸고 설왕설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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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산공개 회오리속 “또다른 청산” 긴장/“무리하면 역효과”… 당도 「기대속의 우려」
절기가 바뀌어 산하에 봄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관계와 정치권은 춘풍 대신 사정·정화의 한파가 몰아칠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치권과 공무원사회는 김영삼대통령의 개혁과 변화의 강조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러나 그 차가운 실체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불안한 표정도 짓는 등 이율배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부정부패 척결을 제1의 과제로 제시하고,27일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면서 장관들의 참여를 촉구하고 나서자 『다음 조치는 어떤 것일까』『어디까지 메스가 가해질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이미 요직인선과 병행해 부정부패 척결의 기본계획과 구체적인 조치사항·일정까지 마련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김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에서 『어제의 정부와 책임 소재·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을 명심하라』고 한 속뜻을 놓고 공직사회에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5공청산때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또다른 청산조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관가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체개혁 및 정치에 대한 바람이 한바탕 불 것이라는데는 이론이 없다. 다만 김 대통령이 『개혁은 하되 서둘지말라는 여론이 60%다.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한 말을 상기해서 급격한 초강경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 대통령과 이회창감사원장은 사전에 짜기라도 한듯 변화와 정화를 천명,예사롭지 않다는 예감을 더욱 깊게한다. 김 대통령은 27일 첫 국무회의에서 『문민시대가 왔음을 국민이 피부로 느끼게 하겠다』면서 자기혁신·자기정화를 강조했다. 같은 시간 이 감사원장은 국회인사에서 「추상같은 감사」「공직사회 정화」를 거듭 역설했다.
김 대통령과 이 원장은 새정부 발족이전 몇차례 대화를 통해 사정기관내부의 문제점,공직사회비리에 관해 탄식과 우려의 공감대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또 여러 채널로부터 검찰 등 고위사정기관의 내부부패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는 것이다.
사정바람이 예고되는 분위기속에서 김 대통령의 야당총재시절 대표적인 정치공작이었던 용팔이사건(통일민주당창당방해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주목되고 있다.
민자당 주변에서는 이택돈 전의원외에 만약 당시 권부의 실력자들이 배후에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진다면 「정의회복」 차원에서 엄정한 조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그 연루자를 미리 예상하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27일 김 대통령이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자진 공개하고 총리와 국무위원 전원이 잇따라 재산을 공개하기로 하자 관가에서는 곧 이어 하위공무원에게까지 어떤 형태로든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고 내심 찜찜해하는 눈치.
「윗물맑기운동」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번의 재산공개가 직접적으로 하위직공무원들의 재산공개로까지 이어지지야 않겠지만 공무원 부조리 척결의 회오리가 시작될 것이라는 신호가 틀림없다는 해석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뜩이나 파격적인 조각으로 움츠러든 관가는 더욱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며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조심스럽지만 볼멘소리도 없지 않다.
요약하면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워버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앙부처의 K모국장은 『일부 부패 공무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공무원들을 모조리 그런 식으로 밀어 붙이면 곤란하다』면서 『누가 뭐래도 결국 개혁의 주도 그룹은 관료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됐으면 한다』고 주문.
요컨대 윗물맑기운동과 공무원 자정운동이 자칫 공무원사회의 위축을 가져오고 보신에만 연연하게 해 공무원들이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케하는데 실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정정국의 예고탄을 바라보는 민자당 의원들의 시선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김 대통령의 정화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원들은 대체로 「당연히 가야할 방향」이라며 동참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즉 김 대통령이 제창한 「윗물맑기운동」은 취임초부터 가시화돼야 한다는게 이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 당직자는 『우선 고위공직자와 정치권의 자정노력이 시급하다는 김 대통령의 인식이 취임과 더불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야만 여타 기득권층을 포함,사회 각계로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부정부패척결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지지도가 최고조에 달한 지금이야말로 사회의 「썩은 곳」을 도려낼 적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들은 주로 민주계의원들 사이에서 많이 나오고 있으며 민정·공화계 의원들도 일단 수긍하는 분위기다.
반면 사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에는 수긍하나 그 칼날이 지나치게 서슬퍼래서는 안된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조용직부대변인 같은 이는 『김 대통령의 재산공개나 이 감사원장의 의지표명은 앞으로 공직자의 기강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사정이 결코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돼서는 안된다』면서 『공무원들을 얼어붙게 해서는 국리민복을 위한 행정을 할 수 없는만큼 온도조절을 해야 할 것』이라고 토를 달았다.
또다른 의원은 『지나간 과거를 들쑤시는 것보다 새 시대를 맞아 공직자들이 몸가짐을 바로 할 수 있는 여건조성에 더 역점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정계의 한 의원도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무리하게 사정해 나갈 경우 현재의 주가하락에서 감지할 수 있듯 경제에 생각지도 못한 부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강제성을 띤 사정이 나름대로의 생존·번식능력을 가진 공직사회 질서를 한순간에 파괴할 경우 국가전반에 걸쳐 큰 혼란을 초래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도 생산할 수 있다』며 조급함은 금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감사원의 직무감사에 대해 언급,『공무원들의 공과를 까다롭게 점검할 경우 모험심을 발휘,실험적으로 진취적인 일을 착수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거꾸로 보신주의자만 득세하게 된다』고 강조.
이밖에 민정·공화계 몇몇 의원들은 사정 한파가 정치권에까지 미칠 가능성을 우려,김대통령의 재산공개 의미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나름의 분석을 시도하는 등 긴장하는 눈치가 역력.
○…민자당 관계자들은 사정바람에 뒷짐지고 구경만하고 있을 입장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당차원에서 그에 화답·부응하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미 대통령직인수위를 가동할 때부터 김 대통령은 「당부터 달라져야 한다」면서 체질개선을 지시한 바 있어 그동안 당무개선위를 중심으로 개혁작업을 서둘러왔다.
기구축소·인원감축으로 요약되는 당체질개선안의 1차목표는 살빼기에 의한 비용절감이며 궁극적으론 돈안들고 깨끗한 정치환경조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자당은 당직개편이 끝나는대로 대통령취임준비 등으로 뒤숭숭한 당내분위기를 되도록 빠른 시일내 정돈하며 곧바로 새정부의 개혁행진에 보조를 맞춰나갈 태세다.
그러나 체질개선의 1단계 작업이 1천5백명에 이르는 사무처요원을 절반 가까이 내몰아야 하는 문제라 쉽지않다.
인원감축이 끝나면 정치부패를 없앨 방안을 마련하는게 급선무다. 그것은 선거제도와 같은 제도개선의 측면도 있고 검은 돈이 오가는 로비 등의 관행상의 측면도 있다.
민자당이 이 두 측면의 개선점을 어떤 방향에서 매듭지을 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김현일·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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