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산 짝퉁 때문에 15조원 손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사례 1=올해 5월 말 중국에서 열린 상하이 모터쇼에 참석했던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깜짝 놀랐다. 바이어를 가장해 "현대.기아차의 엔진과 미션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접근하자 중국 부품업체 관계자가 "물론 만들어줄 수 있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예전엔 '짝퉁(모조품)' 제조업체들이 필터 같은 소모성 제품만 만들었는데 이젠 핵심부품까지 못 만드는 게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올 들어 적발된 중국산 현대모비스 짝퉁은 145억원 어치. 지난 한 해 동안 적발된 것(81억원)의 2배에 가깝다.

#사례 2=콘덴서 제작업체인 S사는 지난해 7월 베이징지사를 개설한 뒤에야 짝퉁이 나돌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접수된 소비자 불만사례의 상당수가 모조품이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모조품 유통업체는 10년간 이 회사와 거래해온 중국 바이어. S사 관계자는 "최근 '불량 제품 때문에 거래를 끊겠다'는 항의가 여러 건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짝퉁 때문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산 모조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모조품으로 인한 우리나라 수출 차질액은 전체 수출액의 5~7%에 달한다. 무역협회는 지난해 수출액(3254억 달러)을 기준으로 짝퉁 피해액이 최소 162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특히 전 세계 짝퉁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인 중국산 짝퉁은 골칫거리다.

◆단속 의지 없는 중국 정부=중국산 짝퉁은 단속이 쉽지 않다. 짝퉁 제조업체들은 은밀한 곳에서 주문생산 방식으로 모조품을 만들어 거래하기 때문이다. 또 어렵게 공장을 찾아낸다 해도 제품에 상표가 부착되지 않았으면 처벌할 수 없다. 사전에 충분한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으면 단속기관인 중국 공상국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중국 내 단속전문 에이전트를 고용해 단속에 필요한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셋톱박스 제조업체인 K사도 지난해 12월 중동 바이어의 항의 e-메일을 받고 곧바로 중국산 짝퉁업체를 단속하려 했지만 아직도 성과가 없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통업체와 생산공장을 찾아냈지만 현장을 급습할 만한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우리가 제품 한 대 팔 때 짝퉁 2대가 팔릴 정도인데도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조학희 해외진출컨설팅 팀장은 "적발되더라도 '불법 영업액의 3배 이내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나서달라"고 호소하는 국내 기업=참다 못한 국내 기업들은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기업체 대표 25명으로 구성된 무역협회 지식재산보호특별위원회는 11일 중국산 짝퉁 피해에 대한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기업들은 이 건의문에서 '정부 당국이 양국 경제장관회의 등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모조품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단속 실시와 처벌기준 강화를 요구해달라'고 촉구했다. 허진규 지식재산보호특별위원회 회장(일진그룹 회장)은 "중국의 저가 모조품으로 인해 기업 매출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며 "국내 피해업체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