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한국은 뭘 먹고살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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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갑신(甲申)의 새해 기상도는 해돋이 때의 짙은 안개만큼이나 뿌옇고 흐려 있다. 비자금의 악취와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이 해를 넘겨서만은 아니다. '시끌벅적'의 예고 속에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이를 헤쳐 나가려는 내일의 비전도 전략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화와 생산.소비의 세계화로 우리 생활의 겉모양은 화려해졌지만 비정규직과 아웃소싱의 보편화로 개인의 삶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사회 안전망은 부실하기 짝이 없고 어버이처럼 종업원을 보살펴 주던 평생 직장도 사라졌다.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제조업은 계속 추락 중이고 중소 공장은 이미 38%가 중국으로 옮겨갔다.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이 빈자리를 메우기는커녕 먹고 즐기는 서비스업마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경제가 2%대 성장에 그친 지난해 병원 환자는 40%(한방은 50%), 음식점은 30%, 택시 손님은 40%가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피부로 느끼는 불황은 'IMF 국난'을 능가한다.

물론 이 모두가 노무현 정부의 잘못만은 아니다. 눈가림과 응급처치로 가려져 왔던 우리 경제의 구조적 질환이 다시 곪아 터지고 있다. 외환위기에서 한국 경제를 구한 것은 내수 경기였고 부동산 활황과 신용카드가 큰 몫을 했다. 이 과정에서 거품을 키우고 너도나도 열심히 앞당겨 소비했다. 알토란 같은 자산은 외환위기 때 팔아치워 이제는 내다팔 것도 많지 않다. 수출이 호조지만 내수가 받쳐주지 않으면 성장 엔진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와 민생에 주력하겠다'는 말만 앞세울 뿐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이렇다할 정치적 합의도 없다. 마음은 모두 총선이라는 콩밭에 가 있는 가운데 한국호의 진로는 그야말로 시계(視界) 제로다.

한국은 앞으로 뭘 먹고살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다시 자리매김하고, 사회갈등을 어떻게 아울러 국내 통합을 이룰 것인가. 월간 NEXT가 '한국의 갈 길을 묻는다'는 신년호 테마기획 시리즈에서 제기한 절박한 물음이기도 하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초보적인 자유무역협정 하나 맺지 못하는 사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세계화와 국가주권은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에 비유된다. 운전은 운전자 마음(주권)이다. 그러나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교통수칙과 법규와 다른 차의 움직임 등 외부적 제약이 따른다. 차가 막힌다고 혼자 갓길을 달릴 수는 없다. 경쟁력을 높이고 고용을 창출하려면 의료.교육.법률 등 지식기반 서비스 부문의 개방 또한 불가피하다. 이익집단 다독거리기를 넘어 나라 전체의 공익과 후생을 앞세운 국가적 의지와 설득력이 너무 아쉽다.

중요한 대외정책적 결정들마저 땜질식 처리에 급급해 대외정책에 혼선을 주는 것은 물론 국가신인도 추락도 자초한다.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마저 미국 주도의 질서 안에서 실속을 챙기는 마당에 탈미(脫美)와 등거리 등 자주외교론으로 국내 정치적 목적 달성을 노린다면 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가. '보이지 않는 주먹'이 없으면 국제질서가 유지되기 어려운 현실인 데도 우리 외교가 언제까지 명분론과 여론의 동향에 발목을 잡혀 있어야 할까. 세대 간 갈등보다 개인적 삶의 불안이 '모든 세대의 위기'로 확산되면서 '2 대 8의 사회'로 양분되는 현상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도토리 키재기식 지지율 경쟁과 바람몰이는 국민을 더욱 피곤케 할 뿐이다. 4월 총선은 이들 물음에 대한 정치권의 현실인식과 해법, 그 실천방안을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자리여야 한다.

변상근 월간 넥스트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