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세상은 소망한다, ‘나 홀로’ 영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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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소설가 김영하씨가 난생 처음 일종의 단편영화를 찍었다. 놀라지 마시길. 그는 “캠코더를 오토 포커스로 놓고 찍으니 사물이 스스로 움직이며 질서를 만들더라”고 말했다. 숙련된 기술이나 산업적 뒷받침 없이도 소설가든 누구든 나 홀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디지털 영화가 미래의 영화로 주목 받는 이유다.

 그렇다고 디지털 영화를 아마추어용으로 여기면 오해다. 디지털 후반 작업이 영화 제작에 필수단계가 되다시피 한 요즘, 기존의 이름난 감독들도 필름작업의 익숙함 대신 디지털의 낯선 세계에 뛰어들곤 한다.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년)가 가까운 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콜래트럴’(2004년)처럼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디지털 특유의 간편함은 상업영화 바깥에서 한결 다양한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이란 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촬영·편집·녹음 등을 혼자 도맡아 ‘10’(2002년)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 감독 가와세 나오미가 갓 태어난 아들의 탯줄을 자르자마자 직접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다큐 ‘출산’(2006년)에 담을 수 있었던 것도 디지털이라 가능했다.

 제1회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하 CinDi)은 이 같은 디지털 영화의 잠재력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영화제다. 기존의 대형 영화제와 달리 차림표가 퍽 날씬하다. 상영작은 경쟁부문과 초청부문을 합해 딱 40편. 20∼27일 서울 CGV압구정점에서 열린다.

 신생 영화제이면서도 과감하게 경쟁부문을 도입한 것은 새로운 매체인 디지털을 통해 새로운 영화작가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한국·중국·일본·필리핀·쿠웨이트·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국의 출품작 가운데 20편을 골랐다. 감독들이 영화만이 아니라 연극·광고·평론·미술 등 다양한 출신인 점이 흥미롭다. 초청부문은 디지털 영화의 지평을 보여주는 작품을 최신작 여부에 구애받지 않고 골랐다. 앞서 소개한 영화들을 포함해 『돈키호테』를 재해석한 스페인 감독 알베르트 세라의 ‘기사에게 경배를’(사진) 등 총 20편. 개막작은 데이비드 린치의 최신작 ‘인랜드 엠파이어’다.

 영화제 기간 중 네 차례 초청부문 감독들이 직접 나오는 ‘디지털 레슨’도 마련된다. ‘필리핀을 상상하라’의 라브 디아즈 감독, ‘퍼펙트 커플’의 스와 노브히로 감독,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정정훈 촬영감독, ‘전쟁은 끝났다?’의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각각 관객들과 강연·토론의 시간을 갖는다.

  글머리에 소개한 김영하씨의 단편 2편은 이 영화제의 트레일러다. 초청부문과 경쟁부문 각 영화에 앞서 상영된다. 김씨는 시인 겸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중국 리훙치 감독과 21일 ‘디지털 토크’라는 대담도 갖는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www.cindi.or.kr) 참조. 인터넷 예매는 CGV홈페이지(www.cgv.co.kr).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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