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부산 맹학교 맹인교사 신창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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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앞못보는 어린 학생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 달 말 정년퇴직으로 38년간 지켜왔던 교단을 떠나는 부산시 남부민3동 「부산 맹학교」의 맹인교사 신창호씨(65)는 못내 아쉬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54년 부산 맹학교 설립 때부터 이 학교 첫 맹인교사로 시작, 만년 평교사로 교단을 마감하는 신 교사는 부산지역 안마사·침술사 양성 정통 1호 교사.
이 때문에 부산지역 안마사·침술사 가운데 신 교사의 비법을 전수 받지 않은 맹인이 없을 정도로 안마·침술교육에 큰 획을 그었다.
그가 맹인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국교 3학년 때인 지난 37년 우연하고도 슬픈 사연이 계기.
정상으로 태어났으나 같은 반 아이들과 장난치다 대꼬창이에 눈이 찔려 점차 시력을 상실, 자신도 완전히 앞못보는 맹인이 되면서부터였다.
이후 고향인 충북청주에서 서울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가 서울 맹학교에서 12년간에 걸쳐 초등부·중등부·사범과를 모두 마쳤고 그 해 설립된 부산 맹학교에서 파란만장했던 교단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이 갑자기 캄캄해지면서 죽고싶은 생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처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얼마나 더 답답하겠느냐는 생각에 이들의 앞을 밝혀주는 일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앞못보는 학생들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교단에 섰던 신 교사였지만 그가 부산 맹학교에서 걸어온 길은 가시밭길이나 다름없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처음 5년간은 비가 새는 판자 막사인데다 자신이 앞을 보지 못하는 탓에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방향감각을 잃어 학교를 못 찾아 몇 시간을 헤매거나 넘어져 다치기 일쑤였다.
게다가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생들에게 어렵게 안마기술 등을 가르쳐 졸업을 시켜도 사회의 갖은 냉대와 편견으로 설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제자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신 교사는 슬픔으로 가슴이 터져 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 교사의 손을 거쳐나간 학생은 지금까지8백60여명.
빨래를 하고 난 탁한 물인지, 맑은 물인지를 구별할 정도로 뛰어난 신 교사의 감각에 힘입어 그에게서 안마·침술을 배운 학생들도 모두 「메스 없는 명의」로 정평 나 있다.
그는 또 『안마와 지압』이라는 교재를 직접 만들어 학생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등 맹인교사 특유의 감각 외에 안마·침술이론에도 뛰어난 실력자다.
『자신의 신체가 불편하더라도 홀로 서기를 하라고 늘 강조한다』는 신 교사는 『졸업생들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 떳떳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제일 뿌듯하다』고 말했다. 【부산=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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