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문제로 깊어진 불신/기본합의서 발효 1년… 진전없는 남북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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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유엔까지 번지면 통일에 외세입김 우려/“과감한 경협으로 핵포기 유도”일부 지적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된지 19일로 만1년이 됐다.
불신과 대결로 점철됐던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됐던 남북기본합의서는 그러나 그 열매를 맺지도 못한채 사장되고 있어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다. 기본합의서 발효를 계기로 남북간에 두터워질 것으로 믿었던 「신뢰」는 무너지고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핵문제는 오히려 악화된 느낌마저 주고있다.
○상호사찰안 못마련
때문에 일부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가 과거 7·4공동성명이 그랬던 것처럼 단지 선언적 의미만 갖는게 아니냐고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남북한이 핵무기의 실험·제조·배치·사용금지를 포함,8개 원칙 등 5개항에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만 해도 그렇다.
공동선언 발표 이후 지금까지 남북한은 모두 13차례의 핵통제 공동위원회 전체회의와 9차례의 위원장 및 위원접촉을 가졌으나 남북 상호핵사찰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지 않은 두개의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 문제로 북한과 IAEA간의 공방전이 뜨거워 남북관계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북한이 지금처럼 계속 『핵개발을 하지도 않았고,은닉하고 있는 것도 없다』며 특별사찰을 거부할 경우 유엔안보리에 북한의 핵문제가 상정돼 한반도가 전세계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소지도 없지않다.
만약 유엔안보리에까지 북한의 핵문제가 넘어가는 최악의 사태가 빚어진다면 유엔안보리는 북한에 ▲특별사찰 권고 ▲강제사찰명령 ▲대북경제 재재조치 ▲군사적 제재조치 등을 내릴 수 있다.
○정부선 핵·경협 연계
이처럼 핵문제를 비롯한 남북문제가 국제문제로 비화될 경우 한반도의 통일은 더욱 어려워질뿐 아니라 남북한의 재량권이 그만큼 줄어들게돼 통일의 길은 우리가 원치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핵문제에 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IAEA에 의한 국제적 사찰뿐 아니라 남북한간의 핵사찰 실천으로 북한의 핵무장 가능성이 봉쇄되지 않는한 남북경협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능력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최신 정보는 작년 11월초 레먼 미 군축처장이 북한의 핵개발 상태에 대해 언급한 내용 그대로다.
즉 국제사찰과 비핵화 공동선언의 결과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상당한 규모의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이 봉쇄되었지만 영변에 있는 5메가와트짜리 원자로에서 핵물질을 추출,소규모 핵무기를 개발할 우려는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단계에서 북한의 핵문제를 풀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성실히 이행되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새정책방향 주목
우선 핵문제와 경제교류 협력을 일괄 타결할 필요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핵문제의 해결보다 경협을 앞세우는 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궁극적으로 포기하게 하는 유인요인이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핵문제가 남북상황을 더 이상 압도하는 분위기가 연출돼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고려대 이호재교수(국제정치)는 『핵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고 보다 과감한 대북경협을 추진함으로써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는 길이 위기에 있는 남북관계의 해결책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는 강경입장도 만만치 않다. 핵문제를 꼬투리 잡아 남북경협을 뒤로 미루고 미·일 등 관계국가들의 외교압력이 계속되면 북한정권이 손을 들고 나올터인데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이른바 「고사론」이 그 논거다. 이 방법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한이 제2의 이라크와 같은 존재로 남게될 수도 있다는 한계가 있다.
아무튼 새정부가 대선공약대로 남북화해·협력관계의 정착­남북연합단계­금세기내 통일실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핵문제의 고리를 풀어야 한다.
새정부가 기존의 대북정책을 답습할 것인지 아니면 보다 강경한 대북입장을 고수할 것인지,수정된 새로운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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