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 TV물 표절 ″수수방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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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 12일 미국이 우리 나라를 저작권법 위반 국으로 지목하고 제재를 강화해올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그 동안 관행처럼 행해져온 외국 TV프로 베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의 소리가 높다.
이 같은 지적은 현재방송프로의 심의를 맡고 있는 방송위원회가 표절 여부에 대한 심의는 거의 하지 않고 있는데다 표절로 밝혀진 프로에 대해 어떤 제재조치도 취하지 않은데 따른 것이다.
외국 TV프로의 표절 여부는 방송위가 당연히 심의해야할 사안이다.
그러나 현재 방송위원회의 심의는 프로그램 내용의 윤리성에 국한돼 있고 외국프로표절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체적인 자료수집이나 모니터링 기구조차 두지 않고 있다.
방송위원회 측은 이에 대해 『외국의 프로를 일일이 모니터 한다는 것이 현실 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직 표절 심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방송위원회가 이미 밝혀진 표절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제재를 취하고 있지 않은 것은 저작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론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 한 사례로 표절로 밝혀진 MBC-TV의 『여명의 눈동자』 『질투』의 드라마 주제가를 작곡한 최경식씨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그 이후에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들과 딸』 『걸어서 하늘까지』 등 서너 편의 주제가를 작곡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인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명의 눈동자』 주제가는 미국영화 『드레스트 투 킬』, 『질투』의 주제가는 일본그룹 하운드 독의 『플라이』란 곡을 표절했다.
또 KBS-2TV의 인기프로 『열전 달리는 일요일』은 지난해 일본 TBS방송사로부터 표절 항의를 받고 이 사실을 시인, 프로그램 중 게임내용을 일부 조정했는데도 담당제작자에 대한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표절에 대한 규제를 하는 것도 아니다.
시청률 경쟁을 해야하는 방송사 측으로서는 국내에서 이에 대한 제재장치가 없는데다 외국 방송사들의 항의나 제소도 지금까지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손쉽게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외국 프로그램의 표절을 구태여 규제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올 상반기 중 실시되는 CATV와 눈앞에 다가온 직접 위성방송 시대에는 프로그램 시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또 장기적으로는 프로그램 공급시장의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게 방송 정책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렇게 외국방송사가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하면 프로그램 표절에 대해 더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것이란 점도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연말 미국은 이미 아직 시행도 하지 않고 있는 CATV의 개방과 외국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을 현재 국내법에 규정돼 있는 30%에서 40%로 높이라는 압력을 가한 적이 있다.
고려대 원우현 교수(언론학)는 『방송위원회가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계속 표절에 대해 과보호로 일관하는 것은 우리 방송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체질을 약화 시켜 개방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는 방송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경고하면서 『표절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로 자체 프로그램 개발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방향을 유도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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