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예산 1000억원 쓰는 문화예술위원회 내분으로 출범 2년 만에 와해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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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김병익(69.사진) 초대 위원장이 9일 위원장직을 내놓았다. 또한 김 위원장은 예술위 최고 심의.의결 기관인 '11인 위원회'의 위원직도 사퇴할 예정이다.

예술위는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내야 한다"는 현 정부의 야심찬 예술정책 기조 아래 2005년 8월 기존 문예진흥원에서 새롭게 재탄생한 '민간 자율' 기구다. 그러나 수장이 물러남에 따라 예술위는 출범 2년도 안 돼 좌초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예술위는 한 해 예산만 1000억원에 이르는, 정부 산하 최대 규모의 문화예술 지원 기구다.

◆소속 위원의 소송 제기가 발단='위원장 자진 사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온 데엔 예산 운용을 둘러싼 심각한 내부 갈등이 있었다. 5월 중순 예술위 소속 위원인 한명희(68) 전 국립국악원장은 예술위를 상대로 '공연 행사 추진 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한 위원은 "10억원의 예산이 드는 신규 국제 공연 행사인 '원 월드뮤직 페스티벌'을 사무처가 위원회 심의.의결 없이 비밀리에 추진해 왔다"고 주장했다. 소속 위원이 위원회 주최의 공연 행사를 중지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행사를 주관한 예술위 사무처는 "지난해 위원회의 의결을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또한 '11인 위원회'도 이와 관련, 6월 초 긴급 회의를 열어 "절차 및 취지에 다소 문제가 있으나 행사는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결정했으나 이후 일부 위원과 사무처 간의 대립 양상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마추어리즘의 실패"=겉으론 공연 행사의 적법성을 놓고 위원과 사무처 간의 '파워 게임' 양상을 보였으나 이번 사태는 예술위가 처한 '구조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현장의 생생함을 정책에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예술가들을 대거 위원회에 등용했으나 예술 행정에 대한 경험이 사실상 전무해 예술위는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파열음을 내왔다. 실제로 예술위는 '정부 산하 연기금 운용기관 경영평가'에서 15~16개 기관 가운데 2005년과 2006년 연이어 최하위를 기록했다.

'장르 이기주의'에 대한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기초예술연대 방현석 위원장은 "국악.연극.문학.무용 등 각 장르에서 한 명씩 위원을 선출하다 보니 위원들이 문화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것보다 자기 장르에 최대한 지원금을 타내려는 데 급급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장르별 안배보다 전문 예술 행정가.법조인.경제인 등 거시적 안목을 갖춘 인사들로 위원회가 재구성돼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민우 기자

◆11인 위원회

▶상임위원:김병익(위원장 겸 문학), 심재찬(사무처장 겸 연극)

▶비상임위원(가나다순):강준혁(문화일반), 김언호(문화일반), 김정헌(시각예술), 김현자(무용), 박신의(문화일반), 박종관(지역문화), 전효관(다원예술), 정완규(음악), 한명희(전통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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