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힘든 북한 경제용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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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계좌→돈자리,전매행위→되거리,돈놀이→변놀이,졸부→갑작부자,어음→수형,수표→행표,해직→철직,중소기업→중세소업,쌀밥→이밥/자본이란 말은 절대 사용안해/교류합의서 마련때 논란예상
「돈자리」(은행계좌) 「변놀이」(돈놀이·이자놀이) 「부스럭돈」(잔돈· 「중세소업」(중소기업)­.
남한 사람들이 들으면 정확히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북한의 경제용어들이다.
남북한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심지어 전문분야라 할 수 있는 경제에 있어서도 표현차가 심해 앞으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세부합의서를 마련할 때 표현방법을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한경제에 예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북한이 특정한 표현을 꼭 넣겠다고 고집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우선 「자본」이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화폐」나 「재산」 등으로 구체적인 표현을 쓴다.
북한의 경제용어 가운데 우리에게 생소한 것은 금융부문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다.
남한에서는 은행에 「계좌」를 개설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계좌」라는 말 대신 「돈자리」라는 말을 쓰는데 「외화돈자리」 「조선원돈자리」 등으로 부른다.
약속어음도 일본말을 본떠 「수형」이라고 말하며,수표도 「행표」라고 부른다. 예컨대 「보증수표」대신 「지불행표」라는 말을 쓴다.
북한에서는 「수표」라고 말하면 도장을 대신해 자기이름을 나타내는 일종의 표식으로 남한의 「서명」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사채업자들이 하는 이자놀이를 「변놀이」라고 부르는가 하면.부동산투기꾼들이 땅을 사 차익을 챙기기 위해 되파는 전매행위를 「되거리」라 말한다. 또 「보증한다」라는 말 대신 반드시 「담보한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경제행위와 관련된 용어에서도 남북한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맞벌이부부」는 「직장세대」로,「격일제 근무」는 「하루돌이 근무」,「격일로 하는 일」은 「날거리」로 각각 부른다. 「해직」이나 「해임」은 「철직」으로 말하고 「태업」은 「태공」,파업은 「경제투쟁」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졸부」는 「갑작부자」로,「고용살이」는 「고농살이」로,「원양어업」은 「먼 바다의 고기잡이」로,「수공」은 「손노동」으로 각각 표현한다.
기업 및 생산현장·제품 등과 관련된 낯선 용어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기업」은 「기업소」로.중소기업은 「중세소업」으로,「공장장」은 「직장장」으로 「양돈장」은 「돼지공장」으로,「비닐론」은 「비날론」으로 각각 표기되고 있다.
「조선」은 「배무이」로,「유제품」은 「젖제품」으로,「인조견」은 「인견」으로,「전기밥솥」은 「전기밥가마」로,「비축미」는 「예비곡」으로 각각 불린다.
경제계획과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표현이 꽤있다.
「개발도상국」을 「발전도상국」으로,「상반기」를 「상반년」으로,「지하자원」은 「지하부원」으로 이름지었다.
또 「완충기」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경제발전단계에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전 성과를 검토하고 계획을 세우는 준비사업기간을 말한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60년을 완충기로 정했었다.
경제개발 「결과」라는 말 대신 「후과」라는 말을 사용하고 「유휴노동력」은 「유휴노력」이라 말하는 한편 자본주의 사회의 각종 세금을 빚대어 「가렴잡세」라는 표현도 쓴다.
특히 경제개발과 관련,북한에서 자주 언급되는 「식의주」는 「의식주」와 같은 말로 반드시 「먹는 것」을 앞세우는 것이 이채롭다.
농업·수산업·어업 등과 관련된 용어들도 차이가 많이 난다.
「이모작」을 「그루살이」로,「채소」를 「남새」로,「평야지대」는 「벌방지대」로,「대풍년」은 「만풍년」으로 각각 부르며 「화곡」은 「부대밭」으로,「쌀밥」은 「이밥」으로 표현한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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