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콩밭에… 임시국회/이상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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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6일 사회·문화분야 질문을 끝으로 5일간의 대정부질문을 마친 제160회 임시국회는 대정부질문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시종 파장분위기였다. 당초 6공 1기중 마지막으로 열리는 국회인지라 대정부질문을 통해 현정권의 공과를 합리적으로 따져보고 정권교체기의 쟁점과 현안을 다뤄 차기정부에 많은 참고를 줄 것으로 기대됐으나 결과는 크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특히 국회를 열자고 목청을 높였던 민주·국민당의원들은 각각 당권경쟁 등 체제정비,당해체위기에 마음이 팔려 정부를 날카롭게 몰아붙이지 못하고 주로 통과의례차원의 형식적 질문들을 늘어놓았다. 원래 개원에 소극적이었던 민자당 의원들은 차기정부의 인사에만 관심쏟는 흔적이 역력했고,따라서 대정부질문도 새정부 슬로건인 「신한국건설」을 찬양하고 선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민자당의원들은 반면 현 정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매몰찬 태도를 보여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불과 열흘뒤면 물러갈 현정부보다는 차기정부에 물어야할 자치단체장선거 실시기기에 관한 질문,굳이 한다면 국회에서 해야 할 본회의장내 각료의석 재배치를 요구한 질문 등은 번지수를 잘못찾은 느낌이다.
국회가 열리면 늘 나타나는 「한국병」적인 현상인 의원들의 결석·이석·잡담도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특히 정주영대표의 정계은퇴로 파당위기에 처한 국민당소속 의원들은 거의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민자당의원들은 중용이 예상되는 실세중진 주변에 모여 무슨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광경이 자주 목격됐다. 민주당의원들 역시 계파별로 짝지어 앉아 장시간 대화를 나눴고 당대표·최고위원 출마자들도 회의장에 가끔씩 나타나서 의석을 순회해 선거운동을 하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의원들은 설문내용으로 보나 태도로 보나 「먹는데는 감돌이,일에는 베돌이」(이가 생기는 자리는 빠지지 않지만 공들여 일해야 할 자리는 요리조리 피하는 사람)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의원들이 이처럼 의욕을 보이지 않은 탓인지 답변대에선 정부측도 특유의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는」듯한 자세로 시간때우기 실력을 발휘했다. 즉 민주당이 제기한 용공음해시비 등 난처한 질문에는 예의 즉답을 회피하는 등 과거의 경험을 잘 살려나가 결국 대정부질문 무용론을 확산시키는데는 의원들과 궁합을 제대로 맞췄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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