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냐 재미냐, 화면이 뜨겁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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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15면

일러스트 강일구

‘무한도전’의 무인도 편 이후 ‘무한도전 폐인’들끼리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촬영지가 오지 속 무인도가 아니라 리조트 근처의 섬이라는 거다. 몇 년 전 줄기세포 논란처럼 눈 밝은 폐인들이 화면 속에서 노홍철 팔에 난 상처 같은 증거를 들면서 이 쇼가 진짜 출연자들을 굶기고 맨바닥에 재운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그러자 ‘한 개면 어떻고 두 개면 어떠냐’라며 음모론을 주장했던 ‘황우석교 줄기교도’들처럼 ‘무한교도’들이 ‘알바 음모론’으로 맞선다. 싸움의 대세는 점점 “왜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정체성을 훼손하느냐”며 증거를 들이대는 진실추구파보다 “출연자들에게 진짜 오지체험을 시켰다면 ‘무한도전’만의 화기애애한 재미가 나왔겠느냐”는 무한재미추구파의 입장 쪽으로 기울어갔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이 리얼리티쇼 ‘서바이벌’ 같다면 시청자들이 원하는 재미를 보장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무한교도’들의 해석법대로 ‘무한도전’의 ‘리얼 버라이어티’란 말을 ‘실제 상황을 다양하게 보여 주는’이 아니라 ‘진짜(real) 오락쇼(variety=오락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이 진실 공방에서 훨씬 여유로워질 수 있다.

TV를 보면 ‘리얼 버라이어티’의 ‘리얼’처럼 ‘진짜’에 사전식 의미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종종 무너진다. 무한도전에서 달리고 모내기하는 행동은 ‘리얼’하지만 그들이 진짜 서로를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 믿기 어렵다. 실제 사연으로 만들어진다는 tvN의 ‘독고영재의 스캔들’은 사건을 재연하는 배우의 얼굴에 흐릿한 마스크를 씌운다. 가짜가 얼굴을 숨기자 진짜 같아진다. 처음엔 진짜 다큐인 줄 알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사람들은 가짜임을 알고 난 뒤에도 이 ‘진짜 같은 가짜’ 다큐 쇼를 재미있어한다.

진짜에 대한 시청자의 기준은 관대하고 느슨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MBC의 ‘경제야 놀자’의 이영자나, ‘미려는 괴로워’의 김미려의 진실에 대해 시청자들은 외면하고 그들을 ‘비호감’의 강으로 건너 보냈다. 도대체 이 진실에 대한 시청자의 기준은 뭔가.

결국 ‘진심 어린 공감’이 이루어지느냐에 달린 것 아닐까. 어차피 ‘쇼’들은 시청자와 TV 간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즐겁게 속아주겠다는. 그런데 속아주는 지점과 공감의 포인트가 어긋날 때 시청자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무한도전’은 웃기는 상황에 공감의 포인트가 있어 그 부분에 속아주는 건 유쾌하다. 반면 이영자나 김미려의 경우 시청자들이 공감한 건 웃음이 아니라 어긋난 우정과 외모에 눈물 흘렸던 그들에 대해 ‘안됐다’는 거였다. 그게 가짜라고 밝혀지니 공감했던 자신의 감정에 찝찝함을 느끼는 거다. 그러니 속일 때 속이더라도 이 예민한 공감의 포인트를 잡아내려는 배려는 필요해 보인다.

이번 주에는 진짜가 가짜였으면 바라는 일도 있었다. 뉴스에서 “파업의 원인이 뭡니까”라는 앵커의 질문에 “왜?” “몰라”라고 답한 기자의 방송사고다. 기자는 우연이 겹쳤다고 진실을 해명했고 방송사에서는 이 리얼한 사고에 대해 징계를 내린단다. 하지만 ‘이건 진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즐거운 사고였다. 그냥 지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기자와 앵커가 벌인 ‘가짜 뉴스’였다고, 그러니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가자고,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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