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컬릿 경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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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밀가루 제국주의란 말이 있다. 후진국들이 선진국에서 생산된 밀가루 맛을 잊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다량의 밀을 수입해야 하고 그것이 결국 선진국 농업의 쇠락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미국이 오래전부터 해왔던 해외 식량원조는 인도적 차원에서 높이 평가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밀을 중심으로한 「맛의 지배」를 겨냥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런 차원에서 한번 어떤 음식에 맛을 들이면 결코 끊을 수 없게 되는 인간의 본능을 연구해 한 나라의 농산물 생산·수출계획을 짜는 「맛의 경제」도 필요하게 됐다.
6·25동란때 그 기막혔던 초컬릿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한국군이 전투용 식량으로 배급된 레이션 뿐만 아니라 대민 원조 식량에도 초컬릿이 섞여 있었다. 혀에서 녹아내리는 초컬릿을 얻기 위해 미군 병사들 주변에는 늘 우리나라 소년들이 따라붙었다. 지금은 그 귀한 초컬릿이 깊은 산골짜기 가게에까지 팔려나간다. 더구나 이제는 밸런타인 데이(2월14일)란 날을 전후해선 주요 도시의 백화점과 호텔 등에서 초컬릿 판매전이 가열되는 정도에 이르렀다. 거기선 국내것 뿐만 아니라 외제 초컬릿이 판을 친다.
세계에서 초컬릿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는 스위스다. 1인당 소비량은 연 9㎏. 하루에 한개 이상씩 먹어치우는 셈이다.
구미에서는 계속되는 경기침체에도 초컬릿 판매량만은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다고 한다. 먹고나면 늘 아쉬은 독특한 맛이 소비를 부추긴다. 국내 메이커들이 제조하는 초컬릿도 종류가 다양하고 광고전이 치열하다.
이런 수입 미각뿐 아니라 전통 미각을 식품공업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개방화에 쫓기는 우리 농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 같다. 청와대 손님 접대용으로 자주 나오는 왕실 한과같은 것을 어린이 입맛에 맞게 개량하고 그 약리적인 효과를 널리 선전하면 어떨까. 밸런타인 데이 대신 우리의 기념·축제일을 기획하고 초컬릿에 못지않은 국산과자를 청소년들에게 선물할 수는 없을까. 한국적 맛의 비밀은 버려진채 외국 입맛에 묻혀버리는 세태가 걱정스럽다.<최철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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