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피해자는 우리 … 왜 칼 겨누나" 朴 "잔꾀 부리다 제 발등 찍은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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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대전 오페라웨딩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전시당 선대위 발대식' 행사에 참석한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가 개태사 주지인 양산 스님의 손을 잡고 환담하고 있다. [대전=뉴시스]


이명박 "노 대통령, 내 낙마에만 골몰"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는 8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떨어뜨리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전 지역 선대위 발족식에서다. 그는 "좌파 정권은 정권 연장을 위해 이명박이 당 경선에 져야 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 같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후보가 정권 차원의 정치공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날 발언엔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맏형 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박근혜 후보 측을 고소.고발한 사건이 6일 서울지검 특수부에 배당된 점을 의식한 듯했다.

이 후보는 이후엔 입을 닫았다. 이날 종교행사에 참석한 그에게 '검찰 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이런 행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이 후보 캠프에선 "명예훼손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한 검찰의 의도가 뭐냐" "검찰의 칼끝이 오히려 우리를 향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 후보의 측근인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당사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명예훼손"이라며 "사실 관계가 명확한 사건인 만큼 3일이면 검찰이 수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희태 선거대책위원장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그는 "시중엔 '이명박 부동산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섰구나' '혐의가 있으니까 검찰이 수사하지 않겠느냐' '이명박은 이제 죽었구나'란 의혹이 국민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핵심은 이명박 측에서 의혹을 밝혀 달라고 고소.고발을 해서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우리가 자살폭탄조도 아니고… 의혹이 있다면 상식적으로 우리가 폭탄을 지고 뛰어들었겠느냐"며 "신문의 제목도 '이명박 부동산 의혹'이 아니라 '이명박 명예훼손 사건'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25년간 검찰에 몸담으며 검사장만 네 번 했는데, 내 경력을 걸고 말하지만 이 후보에겐 불법 혐의가 없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자신감을 표출하면서도 "명예훼손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하는 것은 검찰의 상궤(常軌)를 벗어났다는 생각"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최근 제기된 서울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에 대해 "이상은.김재정씨가 땅을 팔아 받은 264억원 중 10원도 이 후보에게 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씨와 김씨는 264억원 중 35억원을 세금으로 냈고, 20억원을 자신들 소유 회사인 다스의 유상증자에 투자했으며, 나머지 200억여원을 보험상품에 투자했다고 캠프 측은 설명했다. 박형준 대변인도 "피해자는 우리인데 왜 우리에게 칼을 겨누려 하나"라고 반문했다.

서승욱 기자

8일 오전 서울 을지로 두산타워를 방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경선 후보가 아동복 코너에서 부모와 함께 나들이 나온 아기를 품에 안아 보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박근혜 캠프 "특수부 배당 적절하다"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가 8일 오전 기자회견를 했다. 검찰이 이명박 후보 측의 고소사건을 서울지검 특수1부에 배당한 것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그는 "내용을 잘 알아보고 말씀드리겠다"고만 말했다. 당에서 "선거 관련 사건을 특수부에서 담당하겠다는 것은 검찰이 사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이를 빌미로 야당 후보 뒤캐기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나경원 대변인)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으므로 그와 다른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캠프 내부 분위기는 영 다르다. 검찰보다는 이 후보 측의 '이중적 태도'를 집중 성토했다.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유승민 의원은 이날 "자기들이 검찰에 고소해 놓고 이제 와서 검찰을 향해 특수부 배당이 어떻다 저떻다 하는 것은 자가당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언성을 높였다. 유 의원은 "애당초 우리 주장대로 김씨가 금융거래 내역만 공개했으면 다 끝났을 일인데 이 후보 측이 어떻게든 19일 검증 청문회만 넘겨 보려고 잔꾀를 부리다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됐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정치적으로 해결하면 될 일을 검찰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며 "이 후보 측은 지금이라도 즉각 고소를 취하하고 차명 재산의 진상을 스스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캠프에선 오히려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기대하는 기류가 느껴졌다. 박 후보 측이 주장해 왔던 이 후보의 '차명재산 은닉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사실로 밝혀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인 김재원 캠프 대변인은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선 계좌추적이 필수적인 만큼 공안부보다는 특수부에서 맡는 게 정석"이라며 "차제에 검찰이 엄정히 수사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편파수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김 대변인은 "2002년 대선 때 편파수사 논란을 일으켰던 특수부 검사들 중 지금도 특수부에 남아 있는 사람이 어딨느냐"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타이밍을 걱정하는 얘기가 나온다. 만약 발표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확정(8월 20일) 이후로 늦춰진다면 박 후보 측에 도움이 될 게 없다는 판단이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검찰이 한나라당 후보 확정 이후로 수사 발표를 미룬다면 본선에서 범여권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한나라당 후보의 약점을 쥐고 있겠다는 것밖에 더 되느냐"며 "검찰이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는 차명재산설의 진상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wormhol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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