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적색등을 끄려면…/김영배(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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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허생전』은 비극이다. 이재와 이상향 건설로 부국이민의 경륜을 과시했던 허생은 북벌의 비책을 묻는 이완대장에게 삼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재의 등용과 과감한 개혁이었다. 허생은 그것을 도저히 실현하지 못하겠다는 이완을 내쫓고 흔연히 사라지고 만다. 연암이 이 소설을 쓴 이유는 당시의 썩은 지도층을 풍자하려던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결말은 너무 서글프게 끝나고 있다.
○집권층부터 수술해야
요즘 신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수많은 경세가들이 나서서 시국의 처방을 외쳐대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전쟁 와중에서 신북벌삼책이 개진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이렇게 하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21세기 한국의 나아갈 길』…,백가가 경쟁하고 천가지의 처방이 현란하다. 소진,장의가 따로없다.
『신바람을 일으켜야 한다』『혁명적인 제도개혁이 있어야 한다』『인사개선이 있어야 한다』『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민주화의 완결조치가 나와야 한다』…,여러가지 경국의 책들이 시중에 깔려있고 갖가지 처방들을 내놓는 세미나,학회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개중에는 매명을 꾀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 권력에 대해 추파를 던지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지한 의견인들 왜 없겠는가. 강태공의 곧은 낚시도 다 문왕의 시선을 끌기위한 것이라고 하지 않은가. 경세의 재주를 펴보려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 모른다.
이런 경세가들이나 여러 원로,학자 전문가들,당의 대통령직인수위,행정부의 전문가들은 물론 비판적인 지지자들이 한결같이 내놓는 처방들은 결국 부패척결과 경제회생,사회기강 확립과 민주화의 완결로 집약되는 것 같다. 과제는 이미 추출이 되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것이다.
새로운 인물을 써야 한다는 소리가 가장 높다. 40∼50대의 젊은 인사를 과감히 기용해야 개혁이 가능하다는 인사개혁론이 가장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듯 하다. 5,6공 인사를 써서는 안되며 군출신들,권력에 빌붙어 살던 무리들이 재기용 되어서는 안된다는 배척론도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중요하다』『국무총리,안기부장을 잘 골라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지역을 잘 배려해야 한다』는 등 주문도 많고 기대도 많다. 그러나 결국은 다분히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짙은 우리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는 대통령 한사람에게 거의 모든 것이 걸리게 마련이다. 지도자 한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컨대 부패가 가장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누구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집권층의 문제다. 거기에는 행정부와 민자당 등 권력기관,기득계층의 부정과 비리가 가장 문제가 되어있다. 민자당 주변에 이미 부패의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는데 그중에서 누구를 가려쓸 것인가,또 그들을 몽땅 배제하면 일할만한 사람은 어디서 구해다 쓸 것인가.
○새대통령의 결심 중요
우리는 여러차례에 걸쳐 부패의 적색경고등이 켜져있다고 경고해온바가 있다. 이제 누구든지 그것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어 있으며 경제발전이나 심지어는 과학기술의 진전마저도 저해하는 병근이 되고있다고 보고있다.
그런데 왜 못고치는 것인가. 그것을 고쳐야 할 입장에 있는 지도층이 가장 부패해 있고 바로 그 부패의 열매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학입시 부정에서도 지도층의 비리행태와 부패한 사고방식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군사정권 아래서 썩기 시작한 권력의 부패가 6공에 들어서 가위 체제적인 부조리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들이다. 신정부의 가장 큰 부담은 바로 이같은 부패의 승계일 것이다. 총체적인 함몰의 위기에 직면해있는 권력의 부패는 오직 지도부의 「대담한」개혁의지를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집요하게 추진되지 않으면 치유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연·지연따져선 안돼
정책적인 실패는 몇번이고 감당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부패한 권력구조에 대한 해결의 지연은 우리 사회가 이제 더 이상 감당해내기 어려울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경제의 회생이나 산적한 군정유산의 정리,비민주적인 법령 등 제도개혁과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권의 초창기에 부패추방과 함께 과감하게 추진되지 못한다면 어려울 것이다. 신세진 것들,인연,지연 따지다 보면 결국엔 권력체제 내의 밥그릇 임자나 바꾸는 것 밖엔 아무 것도 못하게 될 것이다. 지도자가 성심으로 노심초사 하면 누군들 따라가지 않겠는가.
『산에는 오르는 것 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어렵다. 나는 내려올때 깨끗하게 잘하겠다.』
최근 밝힌 차기대통령의 「하산철학」이 그런 의지의 표현이라고 기대해보고 싶다.<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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