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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人 정치IN] 정성운과 '손학규 선생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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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시베리아를 넘어가겠다”며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다. 김성식 정무특보, 박종희 비서실장 등 핵심 참모 상당수가 동행하지 않았다. 시베리아를 지킨 것은 서강대 교수(정외과) 시절의 제자 그룹이다. 정성운(43) 현 비서실장이 그 좌장 격이다.

손 전 지사와 정 실장이 만난 것은 16년 전이다. 교수와 대학원생으로 만났다. 둘의 관계가 바뀐 것은 손 교수가 1993년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경기 광명·민자당)에 출마하면서다. 당선된 날 밤 손 교수는 제자를 집에 불렀다. 술잔이 몇 순배 돈 뒤 “이번 임기만이라도 나랑 함께하자”고 말했다. 얼큰하게 취한 제자는 준비 중이던 석사
논문도 잊고 “그러겠다”고 답했다. 제자는 수행비서가 됐다.

등원한 지 두어 달쯤 됐을 때의 일이다. 급하게 보고할 일이 있던 정 비서는 국회 의원회관 복도에서 반대편 끝에 서있던 손 의원을 “선생님”이라고 큰 소리로 불렀다. 고함 소리에 놀란 같은 층 야당 의원실 사람 몇몇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내밀었다.

혹 ‘김대중(DJ) 선생님’ 귀국하셨냐고 농담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92년 대선에서 패한 뒤 영국에 갔던 DJ가 곧 돌아올 것이란 보도가 나올 때다. 민망해진 손 의원은 나중에 조용히 정 비서를 불렀다. “여기선 호칭을 의원님이라 하고, 비서는 승용차도 의원 옆자리가 아니라 앞에 앉는 거라더라”고 귀띔했다.

학문적 사제였던 두 사람은 그렇게 정치적 사제가 됐다. 정 실장은 이후 손학규 의원 비서·비서관·보좌관을 거쳐 17대 총선에선 손 전 지사의 옛 지역구(경기 광명 갑)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그는 최근 손 전 지사가 DJ를 면담할 때 비서실장 자격으로 배석했다. 그때 그 사건이 생각나지 않더냐고 묻자 “호칭을 뭐라 했건 그분은 항상 내게 인생의 선생님이었다”고 답했다. 사제의 연으로 뭉친 참모들이 있어 손 전 지사 캠프는 다른 캠프에 비해 단단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사적 인연이 너무 강조되면 합리적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인연의 ‘끈’이 ‘굴레’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정 실장과 제자 그룹의 역할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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